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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지음, 임현정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8월
평점 :
무엇이든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기억을 저장하고 몸을 기계로 보완하며 현실보다 정교한 가상세계를 살아가는 일은 오래전부터 SF가 상상해온 미래다. 『신세계의 아이들』에는 그보다 더 낯선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그러나 기술이 멀리 나아간 만큼 인간까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와 가족을 이루고 가상세계에 자신의 일부를 옮겨놓은 뒤에도 인간은 사랑하는 것을 잃지 않으려 한다.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고,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으며, 타인과 더 깊이 연결되고 싶은 마음. 기술은 수십 년을 앞서 있지만 욕망은 몇천 년 전의 인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 미래와 인간 사이에 벌어진 이 시간차는 『신세계의 아이들』을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미래를 처음 구경하는 사람의 눈이 없다. 누구도 새로운 기술 앞에서 오래 감탄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것들이 충분히 평범해진 세계에서 밥을 먹고, 연애하고, 아이를 키우고, 돈을 벌고, 누군가와 헤어진다. 와인스타인의 미래는 발명의 순간을 건너뛰고 곧장 습관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한때 세계를 뒤집었을 기술에는 생활의 때가 묻어 있고, 경이로웠을 발명품은 가족의 식탁과 침실, 직장과 연애 안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혁신이 일상이 된 뒤에는 기계의 새로움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습성이 도드라진다. 욕심과 외로움, 사랑과 권태도 기술과 함께 미래로 건너간다. 와인스타인은 미래의 발명품보다 그것에 익숙해진 인간에 대해 쓴다.
SF에서 미래는 반드시 예언의 시간이 될 필요가 없다.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멀리 세워두면 오히려 현재와 인간을 낯설게 바라볼 거리가 생긴다. 『신세계의 아이들』은 그 거리를 꽤 넓게 사용한다. 국내에서 최근 접해온 SF 가운데 인물의 정서와 관계에 무게를 싣는 작품들이 많았다면, 이 책은 기술적 가정을 충분히 확장한 다음 그 변화의 폭만큼 인간의 감정과 윤리, 사회의 형태까지 함께 이동시킨다. 기억 하나를 옮길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만 ‘나’의 경계가 흔들리고, 연결의 범위가 넓어지자 친밀함의 의미가 달라진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늘어나는 순간 상실의 범위 역시 함께 넓어진다. 기술적 상상은 인간을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게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한 우회로가 된다. 하드 SF의 사고실험과 소프트 SF의 인간 탐구가 한쪽씩 자리를 나누는 대신, 서로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기술은 인간을 얼마나 바꾸게 될까. 그보다 더 오래 따라오는 물음은,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뀐 뒤에도 인간에게서 무엇이 자꾸 되풀이되는가 하는 것이다.
와인스타인의 기술은 인간이 견뎌온 수많은 ‘어쩔 수 없음’을 하나씩 지운다. 잊는 일, 멀어지는 일, 상대의 마음을 전부 알 수 없는 일 같은 것들. 인간은 그런 한계를 불편해하면서도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왔다. 신세계에서는 그 경계들이 하나씩 허물어진다. 그러나 타인의 내부가 환히 보인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은 친밀함의 극점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이해에는 상대가 더 이상 발견될 여지가 없다는 역설도 숨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들어가 본 적 없는 시간이 있고, 들은 적 없는 생각과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 빈칸을 묻고 기다리며 때로는 잘못 짐작한다. 타인은 이해가 부족해서 타인인 것이 아니라, 아무리 이해해도 전부 나의 것이 될 수 없기에 타인이다. 기술이 없애려던 거리가 오히려 관계를 가능하게 했던 공간으로 되돌아온다.
기억으로 들어가면 경계는 한층 흐려진다. 몸은 하나인데 그 안에 다른 삶의 기억이 들어올 수 있고, 지나갔어야 할 순간은 보존되어 다시 현재로 불려온다. 여기서 기억은 과거의 보관함이라는 익숙한 자리에서 빠져나온다. 겪지 않은 일을 그리워하게 된다면 그 그리움은 누구의 것일까. 사실과 기억이 갈라지고도 감정이 남는다면 어느 쪽을 진짜라고 불러야 할까. 애초에 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보관하며 살아오지도 않았다. 잊고, 덧붙이고, 같은 일을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표정으로 기억한다. 와인스타인이 기억에 기술을 섞는 순간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불안정했던 ‘나’의 경계가 눈에 보이는 형태를 얻는 일이다. 기술이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전에 정체성은 이미 기억이라는 흔들리는 재료 위에 놓여 있었다.
그 흔들림은 사랑과 상실 앞에서 더욱 커진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먼저 관계를 만든다면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던 선은 생각보다 쉽게 흐려진다. 누군가의 하루에 자리를 차지하고, 기다림의 대상이 되고, 사라졌을 때 빈자리를 만든 존재라면 그 관계의 실재를 무엇으로 판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집에서 기술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늘리고, 그와 동시에 애도해야 할 존재도 늘린다. 대체 가능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상실까지 가벼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복제할 수 있는 존재와 대체할 수 있는 관계는 같은 말이 아니다. 하나의 존재를 구성했던 시간까지 복제할 수 없다면 대체품은 빈자리를 없애기보다 그 모양을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집의 따뜻함을 기술의 반대편에 따로 놓기는 어렵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사랑하게 하고 현실에 없던 관계를 가능하게 한 것도 기술이며, 이전에는 없었던 이별과 고독 역시 같은 가능성에서 태어난다. 사랑의 범위가 넓어질 때 슬픔의 영토도 함께 넓어진다. 차갑게 설계된 미래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온기가 한 장면 안에서 포개지는 순간, 따뜻함과 서늘함도 서로의 경계를 잃는다.
더 오래 살고 싶고, 고통을 줄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달라지는 것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범위다. 기술은 불가능했던 소망을 가능한 것으로 옮겨놓고 인간에게 자신이 원했던 것을 실제로 가져보게 한다. 그런데 와인스타인은 소망의 성취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기억을 잃지 않게 된 뒤의 인간, 거리를 없앤 뒤의 관계, 더 많은 존재를 사랑하게 된 이후의 상실을 바라본다. 원하는 것을 얻은 자리에는 충만보다 다음 욕망이 먼저 도착한다. 결핍이 욕망을 만드는 것인지, 욕망하는 인간이 계속해서 새로운 결핍을 발명하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진다. 신세계는 인간의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동시에 부족함의 종류를 늘린다.
이쯤에서 기술을 모든 불행의 원인으로 세우는 일은 지나치게 쉬운 독법이 된다. 와인스타인의 시선이 매서워지는 순간은 오히려 기술 뒤로 숨었던 인간이 다시 앞으로 나올 때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 곁에는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 곁에는 타인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다. 더 나은 기술이 더 나은 인간을 자동으로 만들지 않듯, 기술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이 본래의 선함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문명이 모습을 바꾸어도 사람은 다시 무리를 만들고, 경계를 긋고, 누군가를 돌보는 동시에 누군가를 밀어낸다. 기술이 미래의 것이라면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욕망은 지독할 만큼 인간의 것이다.
이 때문에 『신세계의 아이들』을 디스토피아라는 말 하나로 묶기에도 조금 아까워진다. 이곳의 불안은 기술이 인간을 정복하는 장면보다 인간의 소원을 너무 충실하게 들어주는 순간에 더 짙어진다. 기억하고 싶다는 바람, 연결되고 싶다는 바람, 잃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다. 문제는 그것들이 한계 없이 실현되었을 때 나타난다. 와인스타인의 신세계는 인간에게 금지된 세계라기보다 너무 많은 것이 허락된 세계다. 억압보다 충족이, 결핍보다 과잉이 인간을 낯설게 만드는 미래. 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새로 만들어내는 괴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욕망이 이전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도록 반경을 넓힌다.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신세계에서도 대체되지 않는 하나의 고결한 본질이 남아 있다고 말하기에는 인간은 훨씬 복잡하다. 사랑하고 애도하는 마음과 소유하고 배제하는 마음이 한 존재 안에 함께 산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하면서 그 사람을 자신의 이해 안에 넣으려 하고,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기억을 보존하면서 그 기억에 갇히기도 한다. 몇 겹의 미래를 통과한 뒤에도 사랑과 욕망, 다정함과 잔혹함은 새로운 형태를 얻어 인간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그것들을 아름다운 본질이라고 부르기에는 서로 너무 모순되어 있고, 결함이라고만 부르기에는 그 안에서 사랑과 돌봄 역시 태어난다. 기술은 이 모순을 발명하지도 해결하지도 않은 채, 인간이 품고 있던 것들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만 훨씬 넓혀놓는다. 기술은 인간을 얼마나 바꾸게 될까. 『신세계의 아이들』을 지나며 질문의 방향이 조금 뒤집힌다. 이토록 많은 것이 바뀌어도 인간은 왜 계속 인간인 채로 남는가. 그 익숙함이 따뜻하고, 동시에 서늘하다.
✏️영화사 찬란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