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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어떤 책은 자신의 시간이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린다. 쓰인 문장은 그대로여도 그것을 읽는 사람과 세계가 달라지고, 한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가 새로운 시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2011년에 처음 출간된 최진영의 『끝나지 않는 노래』가 15년을 건너 다시 독자에게 돌아왔다. 그사이 최진영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몸으로 감당하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쓰고, 무너진 세계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을 거쳐 생명의 기원까지 자신의 문학을 넓혀왔다. 오래전부터 그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에게 이 책과의 재회가 각별한 이유도 그 시간에 있다. 한 권의 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와 다시 돌아왔을 때 사이에는 작가가 써온 시간과 독자가 읽어온 시간이 함께 쌓여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의 귀환은 과거의 복원이면서 현재의 독서다.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 일에는 그동안 흘러간 시간까지 함께 읽는 경험이 포함된다. 2026년의 『끝나지 않는 노래』는 그렇게 두 번째 시간을 얻었다.
1927년에 태어난 두자, 그의 쌍둥이 딸 수선과 봉선, 그리고 손녀 은하. 소설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을 따라 긴 시간을 건넌다. 이들을 묶어 ‘여성 3대’라고 부르면 간단하지만, 최진영은 그 간편한 호명에서 한 사람씩 꺼내온다. 두자에게는 두자의 시간이 있고 수선과 봉선에게는 각자의 욕망과 좌절이 있으며 은하에게도 자신의 오늘이 있다. 누군가를 엄마나 할머니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자신과 맺은 관계를 통해 그를 이해하기 쉽다. 엄마에게 엄마가 아니었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할머니에게도 누군가의 딸이었던 시절과 젊은 몸과 욕망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익숙한 호칭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이 소설이 긴 시간을 거슬러 하는 일은 한 가족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계의 이름에 가려진 고유한 생을 다시 호명하는 일. 두자. 수선. 봉선. 은하. 이름을 되돌려주는 순간 역할로 기억되던 사람에게 한 사람의 생애가 돌아온다.
그 생애를 옥죄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사건의 모습으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먹을 것의 개수를 헤아리는 눈, 집 안의 한 공간, 밥과 노동과 결혼과 출산처럼 너무 일상적이어서 역사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들이 한 여성의 세계를 결정한다. 특히 아픈 것은 여성을 억압하는 오래된 질서가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도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는 사랑만큼이나 오래된 규범이 스며 있다. 자신도 그 질서 안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 어느 순간 다음 사람에게 같은 규칙을 요구한다. 폭력은 누군가의 악의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배운 것이 생활의 규칙이 되고, 그 규칙이 다시 누군가의 삶을 좁힐 때 폭력은 한 개인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여성들은 사랑하면서 상처 입히고, 상처 입으면서도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 자신의 삶이 종지에 담긴 까만 간장처럼 좁고 짜고 독하게 느껴지면서도 딸에게는 더 넓은 삶을 바라게 되는 마음. 그 모순은 이들의 사랑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결함이라기보다 사랑조차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언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흔적처럼 보인다. 고통과 함께, 그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는 조금 덜 건네고 싶다는 마음도 세대를 건너 전해진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이 받은 상처의 양을 조금 줄이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 희망은 그렇게 작은 단위로 존재한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왜 이다지도 뼛속까지 시린가. 두자의 시대를 살아본 적도, 수선과 봉선이 통과한 시간을 경험한 적도 없는데 그들의 삶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겪어보지 못한 기억을 몸소 겪은 사람처럼 아파진다. 문학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한다는 말만으로는 이 감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해에는 여전히 나와 타인의 경계가 있지만, 어떤 소설은 그 경계를 잠시 흐린다. 알지 못했던 사람의 배고픔과 두려움, 분노와 체념이 문장을 통과해 읽는 사람의 감각 안으로 들어온다. 경험하지 않은 과거가 기억과 비슷한 무게를 얻는 순간이다.
최진영은 그 긴 역사를 거대한 사건보다 몸과 생활의 감각으로 전한다. 국가의 언어로 쓰인 역사는 식민지와 전쟁,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구분하지만 한 사람의 몸을 통과한 역사는 그렇게 반듯하게 나뉘지 않는다. 거기에는 먹어야 했던 밥과 해야 했던 노동, 낳아야 했던 아이와 견뎌야 했던 관계가 있다. 공식적인 기록에서 한 줄이 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이 된다. 여성의 입으로 전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갖는 힘도 여기에 있다. 역사 바깥에 새로운 사실을 보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을 역사라고 부를 것인지 그 기준을 바꾼다. 시대를 움직인 거대한 사건 옆에 한 사람이 견딘 하루를 놓는다. 그러면 사적인 삶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한 시대의 가장 정밀한 기록이 된다.
이런 감각은 최진영의 소설을 오래 읽게 만드는 힘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인물들은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피해자의 역할만을 맡기지도 않는다. 살아남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시 누군가를 돌보는 동안 한 인간은 어떤 명사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최진영은 그 복잡함을 쉽게 정돈하지 않는다. 독자를 설득하려 애쓰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충분히 살아 있게 만들고, 그 생의 감각이 독자에게 도달하도록 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이야기를 이해했다는 감각보다 누군가의 시간을 한동안 함께 통과했다는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끝나지 않는 노래』에는 이후 여러 작품을 거치며 더욱 깊어진 그 문학의 오래된 맥박이 이미 뛰고 있다. 실제로 최진영은 이번 개정판에서 지난 15년 동안 같은 물음을 서로 다른 이야기로 전해왔음을 깨달았다고 썼다.
제목의 ‘끝나지 않음’도 그래서 고통의 반복만을 뜻하지 않는다. 두자에게서 수선과 봉선으로, 다시 은하에게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삶을 둘러싼 조건은 모습을 바꾸고 이전 세대가 남긴 것은 다음 세대에서 조금 다른 형태를 얻는다. 같은 노래를 이어 부른다고 해서 같은 소절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견뎠던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조금 더 움직이고, 한 사람이 바라기만 했던 삶을 다음 사람은 조금 더 가까이 살아본다. 반복 속에서 생겨나는 그 미세한 차이가 세대라는 긴 시간을 앞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15년 만에 돌아온 이 책에서 다시 듣게 되는 것은 여성들의 고통만은 아니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바라주었던 마음, 살아온 세계보다 조금 넓은 세계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고 싶었던 마음도 함께 이어진다. 최진영은 이번 개정판에서 희망을 자신의 바깥이 아닌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다음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다면, 삶은 물려받은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통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사람은 조금씩 다른 소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래전 한 여성의 몸에서 시작된 삶은 다른 몸과 다른 시대를 지나며 계속 변주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와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었던 사랑, 살아낸 날들과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바람까지 한 소절씩 보태어진다. 우리는 앞선 사람의 노래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세대가 이어진다는 것은 같은 삶을 물려받는 일이 아니라, 앞선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한 채 자신의 소절을 부르는 일일 것이다. 『끝나지 않는 노래』가 다시 돌아온 지금도 그 노래가 계속 들리는 이유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하니포터 13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