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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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은 기억을 맡기기에 제법 어울리는 물질이다. 쉽게 썩거나 닳지 않고, 작은 몸 안에 긴 시간을 품는다.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반지가 한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보석에 새겨진 시간을 지키려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억은 물방울 모양』에서 사람들은 오래된 보석을 해체한다. 금속에서 보석을 떼어내고 모양을 고쳐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다. 기억을 지키겠다면서 기억이 깃든 형태부터 바꾸는 것이다.

데라치 하루나는 이 모순에서 삼십 년의 시간을 꺼낸다. 마흔다섯의 나가세와 다카미네, 모리, 시즈쿠는 중학교 시절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든 사이다. 이후 각자의 시간을 살아온 이들은 ‘주얼리 다카미네’의 폐업을 계기로 다시 한자리에 놓인다. 여기까지가 소설이 현재에서 보여주는 거의 전부다. 그다음 이야기는 앞으로 가지 않는다. 마흔에서 서른다섯으로, 다시 서른과 스물다섯으로. 시간은 다섯 해씩 뒷걸음질하고 마침내 네 사람이 열다섯이었던 날에 닿는다. 미래를 향해 읽던 독서의 습관도 이곳에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를 기다리는 대신 이미 본 사람의 과거를 뒤늦게 알게 된다. 먼저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아가는 독서는 조금 묘하다. 마흔다섯의 어떤 표정은 삼십 대의 시간을 지나며 다른 뜻을 얻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관계의 거리는 스무 살의 한 장면을 만난 뒤 새롭게 읽힌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다는 익숙한 인과가 거꾸로 작동한다. 이미 도착한 현재가 과거를 읽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기억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과거는 지나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지 않다. 오늘의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에 따라 오래전의 일이 갑자기 선명해지고, 한때 중요했던 기억이 어느 순간 힘을 잃는다. 사건은 그대로인데 의미가 움직인다. 열다섯에 알았던 친구와 마흔다섯에 기억하는 친구가 같을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 흐른 삼십 년은 상대를 변화시켰고, 그를 바라보는 자신도 바꾸어놓았다. 그렇다면 기억을 지킨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처음의 감정과 의미를 훼손하지 않은 채 보존하는 일이라면 인간의 기억은 그 임무에 자주 실패한다. 하지만 오래된 보석을 리폼하는 손길을 바라보면 다른 방식의 보존을 생각할 수 있다. 원래의 장신구는 사라져도 그 안에 있던 물질은 다음 형태로 옮겨간다. 이전의 시간을 버리지 않으면서 지금의 몸에 맞게 고치는 것. 과거를 현재 속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사람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네 사람은 삼십 년 내내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만나지 않는 시간이 있고, 상대의 삶을 모르는 기간도 길다. 그러나 데라치 하루나는 그 공백을 관계의 실패로 처리하지 않는다. 오래 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래된 사이라는 사실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들의 우정에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의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다시 만났을 때 기억 속 상대와 현재의 상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자리가 있다. 누군가를 오래 안다는 말에는 조금 위험한 확신도 섞여 있다. ‘나는 너를 안다’는 문장이 현재의 상대보다 기억 속의 상대를 가리키기 시작할 때, 오래된 시간은 친밀함만큼이나 단단한 틀이 된다. 이 소설의 관계가 다정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서로의 삼십 년을 전부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나지 않았던 시간까지 설명받아야만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관계가 오래된다는 것은 상대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보다, 달라진 상대와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다는 뜻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태도는 각자가 지나온 실패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이어진다. 이들의 삶에는 잘못 고른 길과 상처받은 시간이 있고, 지나고 보니 자신에게 맞지 않았던 선택도 있다. 소설은 그것들을 훗날의 행복을 준비한 과정으로 정돈하지 않는다. 아팠던 과거에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한다면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 경험에서 의미까지 생산해야 한다. 지나간 일을 모두 성장의 근거로 만들지 않아도 인간은 살아간다. 어떤 기억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고, 삶은 그것을 데리고 다음 시기로 이동한다. 그래서 리폼이라는 말은 치유보다 조금 넓게 읽힌다. 망가진 것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달라진 것을 지금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과거를 좋았던 일로 바꾸지도 않고 상처의 흔적을 삭제하지도 않는다. 다만 달라진 현재가 그것을 품을 수 있도록 자리와 모양을 고친다. 인간은 그렇게 과거의 의미를 거듭 고쳐 쓰며 현재를 살아간다.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열다섯의 네 사람 앞에는 물방울이 있다. 졸업 작품의 모티브가 된 물방울은 그때부터 이 소설의 시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떨어진 물은 한곳에 고이지 않는다. 흐르고 섞이고 증발한 뒤 다시 비가 된다. 어느 순간을 잘라 이것이 처음의 물방울이라고 말하기 어려운데도 물의 운동은 계속된다. 보석과 물방울은 그래서 묘한 짝을 이룬다. 하나는 단단해서 오래 남고, 다른 하나는 형태조차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석은 리폼을 거쳐야 다시 누군가의 시간이 되고, 물은 형태를 버리며 순환한다. 영원을 말하기 위해 소설이 선택한 두 물질은 결국 보존보다 변화를 보여준다. 변하지 않는 것만 오래가는 세계에서는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영원에 닿기 어렵다.

열다섯의 아이들이 ‘영원’이라는 말을 처음 만난 뒤 삼십 년이 흐른다. 그동안 사람은 달라지고 관계는 느슨해지며 기억의 모양도 여러 번 바뀐다. 그 변화 가운데 무엇이 처음 그대로 남았는지를 찾는 일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물방울에게 처음의 형태를 되돌려달라고 할 수 없듯이. 다만 한때 존재했던 것이 다음 형태 안에도 조금씩 섞여 있다는 사실은 알아볼 수 있다. 지금의 자신에게 오래전의 시간이 섞여 있고, 현재의 관계에는 만나지 않았던 세월까지 들어 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작은 보석함보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흐르는 물을 닮았다. 붙잡아두면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지 못하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흐르는 것.

『기억은 물방울 모양』이 말하는 영원은 그렇게 시간의 길이보다 변화의 방식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 남기 위해 단단해지는 삶도 있지만, 모양을 바꾸면서 이어지는 삶도 있다. 삼십 년 전의 물방울과 오늘 내리는 비가 같은 물일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 다시 한자리에 앉을 수 있다면, 기억 역시 처음과 다른 의미로 오늘의 삶에 스며들 수 있다. 사라진다는 말과 이어진다는 말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 이 소설은 그 사이를 삼십 년에 걸쳐 흐른다. 영원히 간직한다는 말은 한때의 모습을 보존하는 데서 벗어나, 변화한 것들이 다시 이어질 자리를 내어주는 쪽으로 의미를 넓혀간다.

✏️도서출판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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