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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평점 :
독서인이라면 한 번쯤 『종의 기원』을 읽었다는 말을 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책장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고전이 있고, 제목을 아는 것만으로도 괜히 뿌듯해지는 책이 있다. 『종의 기원』이 내게는 그랬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막상 첫 장을 펼치면 긴 문장과 낯선 생물학적 논의에 눈이 핑핑 돌았고, 어느새 책을 베개 삼아 잠들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제목은 꽤 솔직하고 유쾌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제목이 처음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진화’라는 말에는 묘하게 서열이 끼어든다. 더 복잡해지고, 더 정교해지고, 더 뛰어난 형태를 향해 생명이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는 진화를 배워왔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진화의 역사를 조금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 그림은 꽤 우스워진다. 생명에는 계단도 꼭대기도 없기 때문이다.
사라시나 이사오는 『종의 기원』의 목차를 그대로 따라간다. 1859년 초판의 문장을 직접 가져오고, 다윈이 실제로 무엇을 보았으며 그 관찰에서 어떤 논리를 끌어냈는지를 하나씩 짚는다. 그리고 그 옆에 현대의 진화생물학을 세운다. 유전 법칙과 DNA에 관한 지식, 다윈이 알 수 없었던 이후의 발견들이 오래된 문장 사이로 들어온다. 19세기의 자연사를 읽다가 어느 순간 오늘의 과학을 마주하는 식이다. 덕분에 다윈의 이론은 완성된 기념비처럼 서 있지 않는다. 관찰하고 추론하고 틀리고 수정하는 인간의 지적 작업 속에서 다시 움직인다. 과학의 역사가 한 줄로 곧게 뻗은 연대기가 아니라, 이전의 설명 위에 새로운 설명이 포개지는 층위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히려 다윈의 오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더 흥미로워졌다. 유전 법칙을 몰랐고 DNA도 몰랐던 사람이 어떻게 생물의 변이와 자연선택을 그토록 멀리 밀고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설명하지 못했던 빈자리를 이후의 과학은 어떻게 메웠을까. 위대한 사상가를 완벽한 모습으로 박제하는 순간, 그의 사상이 태어난 조건과 그가 넘어선 한계까지 함께 사라진다. 이 책은 다윈이 틀렸던 자리까지 펼쳐놓고 그 위에 오늘의 과학을 겹쳐놓는다. 그래서 오히려 무엇이 다윈의 진짜 공헌이었는지가 선명해진다. 과학의 강함은 한 번 세운 설명을 끝까지 지키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틀린 부분을 발견하면 고쳐 쓰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설명의 모양까지 바꾸는 데 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에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덧붙인다. 살아남은 생물을 보면 으레 그 생물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깔끔하게 생물을 다듬지 않는다. 선택의 압력이 약한 형질은 꽤 느슨하게 남아 있을 수 있고, 쓸모가 줄어든 흔적기관에는 다양한 변이가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의 꼬리뼈처럼 지금의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지 않은 구조가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것도 그런 사례다. 생명은 엔지니어가 완성품을 내놓듯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래된 부품을 그대로 달고 있기도 하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구조를 품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진화는 완벽한 생물을 제작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생명 위에서 다음 세대가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만 유독 굵게 그어놓았던 밑줄도 지워진다. 인간은 진화의 목적지가 아니라 수많은 가지 중 하나다. 특정한 환경과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하나의 결과다. 우리보다 먼저 사라진 수많은 생물이 있었고,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생물도 있을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에게만 결승선을 그어놓는 순간, 생명의 역사는 인간을 위한 서사가 되어버린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익숙한 서사의 중심에서 인간을 끌어내린다. 인간에게 주어졌던 특별석을 치우고 나면, 생명의 역사는 훨씬 넓어진다.
그래서 결국 이 책에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종의 기원』의 내용보다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쉽게 모든 것에 목적을 부여하고, 현재의 모습을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월함까지 덧붙인다. 진화론은 그런 습관을 하나씩 걷어낸다. 생명은 어디를 향해 가는지보다 어디에서 왔고 어떤 조건 속에서 달라졌는지를 묻게 한다.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은 승리의 증명도, 완성의 증명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은 『종의 기원』을 대신 읽어주는 책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원전의 목차를 따라가고, 다윈의 문장을 직접 만나고, 그 문장을 오늘의 과학으로 다시 검토하는 구성은 독자에게 원전을 읽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변화가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종의 기원』을 읽었다는 사실이 갖고 싶었다면, 지금은 다윈이 실제로 어떤 문장을 썼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읽은 척’이라는 장난스러운 제목이 오히려 독자를 원전 앞으로 밀어놓는 것이다.
처음에는 『종의 기원』을 읽었다는 이름표가 갖고 싶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누군가 그 책을 이야기하면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이름표가 조금 우스워졌다. 다윈이 어떤 문장을 썼는지, 무엇을 몰랐는지, 그가 보았던 생명의 모습이 이후의 과학에서 어떻게 다시 해석되었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종의 기원』은 읽었다고 말하고 싶은 책보다, 직접 펼쳐서 확인하고 싶은 책에 가까워졌다.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제목이 결국 가장 영리한 장난이었던 셈이다. 읽은 척하려고 들어갔다가, 원전을 읽지 않고서는 찜찜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도서출판 까치글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