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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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 한마디가 붙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의심을 멈추는가.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가능성을 살피며 정말 그런지 한 번 더 생각하던 태도는 ‘과학적으로’라는 수식어 앞에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과학의 본질은 확신에 있지 않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모으고, 틀렸다면 수정한다. 그렇기에 과학은 본래 확신보다 의심에 가까운 학문이다. ‘과학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느끼고, 숫자와 그래프가 등장하면 그 안에 담긴 전제까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은 바로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을 연구해온 지바 사토시는 우생학과 리센코주의, 유전과 인간 행동을 둘러싼 논쟁, 백신과 진화, 생물다양성과 대멸종에 관한 사례를 차례로 불러낸다.

우생학의 역사는 그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능력이나 성향에 유전적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연구하는 것과, 그 사실을 근거로 어떤 인간이 더 우수하며 누구의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판단이다. 사실에 관한 명제로부터 당위에 관한 결론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사이를 메울 별도의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과학이 사실을 설명하는 능력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사실이 곧바로 어떤 사회가 옳은지까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언어가 인간의 가치관과 권력으로부터 언제나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리센코주의의 역사는 과학적 주장이 정치적 이념과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특정한 이론이 권력과 만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가설을 넘어 국가가 승인한 ‘옳은 과학’이 되고, 반대되는 연구와 학문은 배제될 수 있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특정 유전자와 폭력성 사이에 관계가 발견되면 ‘폭력 유전자’라는 이름이 붙고, 어떤 생물학적 특성과 행동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면 그것이 개인의 성향이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지 않는 순간 복잡한 인간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 속에 갇힌다. 다른 견해의 근거에는 엄격한 검증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 역시 하나의 편향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의심은 꽤 번거롭다. 한 번 더 출처를 찾아야 하고,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야 하며,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결론 앞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내놓은 근거만 의심하면서,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것 역시 과학을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이런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오늘날 과학적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기 때문이다. AI와 SNS를 통해 연구 결과와 통계, 전문가의 견해가 하루에도 수없이 흘러들어온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는 짧은 문장 하나가 복잡한 연구의 과정과 불확실성을 지워버린 채 유통되기도 한다. 한 연구의 결과가 하나의 사실로 압축되고, 하나의 사실이 다시 확신으로 변하는 동안 그 사이에 존재했던 조건과 한계는 사라진다.

과학의 신뢰성은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과학에서 재현 가능성은 중요한 검증 장치이며, 심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재현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 100건을 다시 검증한 결과 원래 연구보다 효과의 크기가 절반 정도로 감소했고,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재현된 연구는 36%에 그쳤다. 과학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내부에 남겨둔 채 앞으로 나아가는 지식 체계다.

따라서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과학적 주장 앞에서 의심을 거두는 일이 아니다. 한 번의 연구보다 반복되는 검증을, 강한 확신보다 충분한 근거를, 내가 듣고 싶은 결론보다 그 결론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피는 태도까지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다. 때로는 답을 얻는 것보다 답을 잠시 보류하는 편이 더 정확한 판단이 되기도 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동안 과학은 권위의 언어에서 다시 탐구의 언어로 돌아온다. 어쩌면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과학적인 자세는 무엇이든 쉽게 믿지 않는 법일 것이다.

✏️도서출판 부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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