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 킴
에바 틴드 지음, 허여 셀린느 옮김 / 산지니 / 2026년 5월
평점 :
한 사람의 출생은 얼마나 오래 한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을까. 태어난 장소와 날짜, 부모의 이름, 처음 불린 이름까지도 누군가의 기록에 의해 바뀔 수 있다면, 정체성이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에바 틴드의 『민 킴』은 입양인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소설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한 인간의 삶을 둘러싼 기록과 서사의 권한을 묻는 작품이다. 누가 이름을 붙이고, 누가 과거를 기록하고, 누가 한 사람의 삶에 하나의 설명을 부여하는가.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이미 지나간 역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숫자로 보면 그 역사는 놀라울 만큼 거대하다.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약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되며, 1970년대에만 4만 6천 명, 1980년대에는 6만 6천 명 이상이 해외로 보내졌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해외입양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더 나은 환경으로 보내는 일, 혹은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선물하는 일로 설명되었다. 서사는 매끄러웠다. 아이는 버려졌고, 누군가 구했고, 아이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 서사 안에서는 아이가 무엇을 잃었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민 킴』이 오래 바라보는 곳은 바로 그 매끄러운 서사가 덮어버린 자리다. 입양은 한 사람의 삶에 새로운 가족을 더하는 동시에 이전의 관계와 이름, 언어와 기록을 끊어놓는 사건이기도 하다. 두 가지 사실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사실과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감각, 좋은 양부모와 깊은 상실은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 복잡한 시간을 ‘행복한 입양’과 ‘불행한 입양’으로 나누는 순간, 한 인간의 삶은 다시 타인이 이해하기 편한 이야기로 축소된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의 삶조차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비행기에서 출발하고 같은 나라에서 온 두 아이에게도 전혀 다른 시간이 주어진다. 하나의 범주가 개인의 삶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입양인’이라는 말은 하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가족과 기억, 사랑과 폭력, 침묵과 저항이 겹겹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이름은 유난히 무겁다. 이름은 한 사람을 부르는 가장 사적인 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한 인간을 분류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기도 하다. 김남숙은 에바가 되고, 김미인은 꿀마이가 된다. 한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새로운 삶의 시작과 이전 삶의 단절이 함께 들어온다. 그리고 ‘민 킴’이라는 이름은 그 단절 이후에 다시 자기 자신을 호명하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은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서 멀어져 있던 이름을 다시 현재의 언어로 가져오는 일이다. 누가 나를 무엇이라고 불렀는가에서, 나는 나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로 이동하는 순간. 그때 이름은 출생의 증거를 넘어, 한 사람의 삶을 누가 부를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된다. 정체성의 주도권이 타인의 손에서 자신의 손으로 옮겨오는 장면.
기록은 더욱 냉정하다. 종이 위에 적힌 생년월일과 출생지, 부모의 이름은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이지만, 기록되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되기 쉽다. 한국의 해외입양을 둘러싼 최근 조사에서는 실제 출생 배경과 다른 신원이나 허위 서류를 뒤늦게 알게 된 입양인들의 사례가 잇따라 드러났다. 그렇다면 기록은 기억보다 진실한가. 서류에 적힌 이름이 기억 속의 이름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출생의 기록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과거에 접근할 권리를 잃는다면, 한 인간에게서 빼앗긴 것은 정보 몇 줄만이 아니라 자기 삶의 출발점을 스스로 확인할 권리다. 현재 한국의 국제입양 관련 법률에서도 입양인이 자신의 입양정보 공개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그리움이나 사적인 호기심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민 킴』은 ‘뿌리를 찾는 이야기’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뿌리를 찾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던 과거가 정말 나의 과거였는가. 그리고 그 과거를 누가,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떤 언어로 만들어놓았는가. 에바 틴드는 이 질문을 소설의 형식 안으로 가져온다. 시와 문서, 편지와 대화, 실제적인 기록과 문학적 언어가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한다. 삶을 말하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윤리가 따라붙는다. 한 사람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또다시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말해지지 않았던 삶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말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조율하는 행위다.
이 지점에서 『민 킴』은 입양에 관한 소설을 넘어선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타인이 붙여놓은 설명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이 기억하는 나, 사회가 분류하는 나, 서류가 증명하는 나, 타인이 이해한 나. 그 설명들이 쌓여 한 사람의 이름이 되고 전기가 된다. 그러나 그 안에 정작 자신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면, 아무리 정확한 기록이라 해도 그것은 온전한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 에바 틴드의 다른 작품인 『뿌리』에서 기원을 찾아 떠나는 인간을 통해 어디에 머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면, 『민 킴』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자리로 들어간다. 어떤 이야기로 살아갈 것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보다, 그 출생을 둘러싼 이야기를 누가 써왔는가가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민 킴』을 읽고 나면 이름을 보는 방식부터 조금 달라진다. 이름은 출생증명서 한 귀퉁이에 적힌 고유명사가 아니며, 타인이 나를 불러온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한 번 지워진 이름을 되찾는 일은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 그 이름을 다시 발음할 권리를 갖는 일이다. 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종이에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은 기록되는 과정에서 잘려나가고, 어떤 사람은 타인이 만든 문장 속에서 평생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한 인간에게 자기 삶의 문장을 돌려주는 일.
에바 틴드가 이 책에서 해낸 일은 과거를 깨끗하게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원이 불가능한 자리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사라진 이름과 남겨진 이름, 기억하는 사람과 기록하는 사람, 사랑과 상실이 서로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면서, 이미 쓰여진 삶의 문장 사이에 자신의 목소리를 끼워 넣는다. 『뿌리』에서 기원을 향해 움직이던 시선은 『민 킴』에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그 기록을 만든 손을 바라본다. 삶은 출생증명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써놓은 문장을 그대로 물려받는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결국 필요한 것은 완벽한 과거가 아니라, 내 삶을 설명하는 문장에 누구의 이름으로 서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그리고 『민 킴』은 그 서명을 되찾는 이야기다.
✏️도서출판 산지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