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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들 때 - 유엔 특별보고관이 전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10개의 얼굴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지음, 최보민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평점 :
세계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존재한다. 매일 새로운 전쟁과 죽음이 뉴스의 화면을 채우고, 우리는 그것들을 몇 초 동안 바라본 뒤 다시 각자의 하루로 돌아간다. 숫자가 늘어나고, 이름이 사라지고, 비극은 어느새 하나의 통계가 된다.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다룬 프란체스카 알바네세의 『세상이 잠들 때』는 바로 그 익숙한 무감각에서 시작한다. 이 책이 들려주는 것은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다. 고통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외면했는가에 대한 증언이며,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관한 책.
팔레스타인의 오늘을 이해하려면 2023년 10월 7일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전쟁 속에서 7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거나 피란해야 했던 나크바가 있었고,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또 한 번의 대규모 이주가 이어졌다. 가자에서는 2007년 하마스의 무력 장악 이후 이스라엘이 봉쇄를 시행하면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 식량과 연료, 의료와 생활 기반에 오랜 제약이 이어졌다. 그리고 2023년 10월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시작된 전쟁은 이 오래된 역사 위에 또 하나의 참혹한 시간을 덧씌웠다. 2025년 10월 휴전이 성립한 뒤에도 가자에서는 공습과 포격, 총격이 이어지고 있으며, 2026년 9월 현재 가자 인구의 상당수가 심각한 식량 불안과 열악한 식수·의료 환경에 놓여 있다. 서안에서도 정착민 폭력과 이동 제한, 강제 이주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전쟁 한 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현재의 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 참상이 어떤 시간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알바네세는 역사의 거대한 문을 열기 전에 그 앞에 한 사람을 세운다. 여섯 살 힌드 라잡, 가자에서 잘린 팔다리를 이어 붙이며 밤을 지새운 외과 의사 가산 아부 시타, 폭격으로 물감을 사던 화방이 사라진 뒤에도 그림을 그리는 말락 마타르. 이 책에서 사람의 이름은 역사를 읽는 가장 작은 단위가 된다. 수십 년의 점령과 수많은 죽음도 결국 한 사람의 몸과 하루를 통과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전쟁은 지도 위의 화살표가 되고, 난민은 통계표의 숫자가 되며, 죽음은 뉴스의 자막으로 지나가지만, 이름 하나가 기록되는 순간 숫자였던 죽음에는 다시 한 사람의 생이 돌아온다. 힌드는 사망자 수 가운데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아이였고, 말락에게 가자는 지도상의 한 지명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되돌아가는 고향이었다. 거대한 비극을 다시 인간의 크기로 되돌려놓는 것. 이 책이 택한 기록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잔혹한 것은 죽음의 숫자만이 아니다. 바로 인간이 숫자로 축소되는 과정이다. 몇 명이 죽었는지, 몇 채의 건물이 무너졌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났는지를 세는 일은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가 인간을 대신하는 순간 그 숫자에는 목소리도 체온도 없는 기록만 남는다. 누구의 어린 시절이었는지, 누구의 가족이었는지, 누가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사라진다. 알바네세는 그 지워진 자리에 다시 사람을 돌려놓는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취급하는 순간 폭력은 이미 시작된다는 오랜 윤리가 여기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몸의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아이의 생명, 환자의 몸, 예술가의 손을 어떤 정치적 명분보다 아래에 둘 수 있는 세계라면 그 세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폭력은 언제나 총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세상이 잠들 때』가 보여주는 점령의 풍경에는 검문소와 철거된 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어떤 땅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처럼 너무 일상적이어서 폭력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조건들이 촘촘하게 놓여 있다. 아부 하산과 조지의 이야기를 따라 예루살렘을 바라보면 도시의 돌과 골목은 더 이상 중립적인 배경으로 남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는 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막힌 길이고 한 사람에게는 집인 장소가 다른 사람에게는 떠나야 할 이유가 된다. 폭력은 때때로 인간을 쓰러뜨리는 대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반경을 조금씩 줄인다. 그러고는 그 좁아진 삶을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책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하나의 거대한 폭발 장면으로 소비하지 못하게 한다. 잉그리드의 이야기에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구조를 바라보고, 에얄의 이야기에서 공간과 건축이 폭력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서, 개인의 불행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사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파르트헹히트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사람을 서로 다른 법과 권리의 체계에 가두고, 거주와 이동의 자유까지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제도적 분리와 차별을 뜻한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로 그런 구조의 언어로 바라본다. 폭력은 누군가의 손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 지도와 도로, 국경과 건물의 모양 속에서도 작동한다. 눈앞에서 터지는 폭탄보다 오래 살아남는 폭력이 있다. 매일의 생활을 조금씩 덜 자유롭게 만들고, 조금씩 덜 안전하게 만들고, 마침내 그 상태를 ‘원래 그런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폭력이다.
집을 잃는다는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딸려온다. 말락 마타르의 이야기가 묻는 것은 난민에게 주소가 어디인가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다. 집에는 벽과 지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빛, 가족의 목소리, 익숙한 골목의 냄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이 있다. 장소를 빼앗는다는 것은 그 풍경이 존재할 자리를 빼앗는 일이며, 때로는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문장까지 빼앗는 일이다. 그래서 말락이 떠난 뒤에도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한 예술 활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세계에 색을 입혀 기억 속에 다시 세우는 일,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는 장소를 자신의 손으로 계속 불러내는 일처럼 보인다.
기억은 그렇게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것이 된다. 가보르 마테의 이야기에 이르면 상처는 한 사람의 몸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건너간다. 누군가의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집, 부모가 들려준 추방의 이야기, 아직 가보지 못한 고향의 이름이 한 사람의 현재를 구성한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보관하는 서랍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과 장소를 현재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행위다. 누군가의 삶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며, 공동체가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는 방식이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지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페이지를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던 사람의 자리까지 함께 지워버린다.
책의 마지막에 놓인 ‘희망이라는 끊을 수 없는 습관’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더욱 오래 생각하게 한다. 이토록 거대한 폭력 앞에서 희망이라는 말은 때대로 지나치게 순진하게 들린다. 하지만 알바네세가 말하는 희망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낙관과 거리가 있다. 절망할 이유가 충분한 세계에서도 인간이 행동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도 기억하고, 증언하고, 서로의 편에 서는 것. 희망은 한 번 품고 끝나는 감정이 아니라, 절망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선택해야 하는 습관이 된다.
연대는 거창한 구호보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먼저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멀리 있는 타인의 고통을 나와 무관한 사건으로 밀어내지 않는 것,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바라보는 것,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누군가의 고통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 고통을 만들어낸 세계에서 나의 위치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고통이 있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지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평범한 아침을 맞고, 폭격으로 병원이 사라지는 동안 또 다른 곳에서는 하루의 일정을 걱정한다. 모든 비극을 막아낼 힘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 못한 척할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다. 세계가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한다. 알바네세가 이 책에서 기록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 잠을 깨우는 목소리다. 그리고 책은 그 목소리를 건네받은 독자에게 묻는다. 보았는가.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본 뒤에도 이전과 같은 자리에서 잠들 수 있는가.
✏️도서출판 어크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떤 고통은 세상이 잠든 사이에도 계속되고, 어떤 목소리는 우리가 외면하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의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이름 뒤에 가려진 열 명의 삶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상실, 두려움과 사랑, 그리고 매일을 견디며 이어가는 평범한 삶의 언어가 열 개의 목소리로 되살아난다. 국제법과 인권의 언어로 팔레스타인을 말해온 알바네세가 이번에는 통계와 보고서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기록이다. 법률가이자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추적해온 그녀는 세계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분쟁’이라는 단어를 걷어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전쟁을 지도 위의 국경이나 뉴스 속 사망자 수로만 이해해온 사람에게 이 책은 다른 좌표를 건넨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하루,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몸, 빼앗긴 땅을 기억하는 방식,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계속되는 식사와 출근과 잠 같은 것들. 폭력은 언제나 총성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법과 행정, 국경과 검문소, 공간과 언어의 모습으로 한 사람의 하루를 조금씩 잠식한다. 이 책이 오래 바라보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조금씩’의 역사다. 그래서 이 책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처음 들여다보려는 독자에게도, 이미 수없이 많은 기사와 영상을 통해 그곳을 바라봐온 독자에게도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 멈춰 선 사람, 세계의 비극을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어느 순간부터 숫자와 이미지에 무감각해진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열 명의 목소리를 통해 한 사회의 역사가 결국 개별적인 삶의 기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페이지를 쉽게 닫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먼저의 일은 정확히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을 기억하고, 증언을 읽고, 누군가의 삶이 지워지는 과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읽은 뒤 더 나아가고 싶다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같은 공식 인도주의 기관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지원에 참여할 수도 있다. 세상이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이 잠들 때』는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건네는 열 개의 목소리이자,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