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신 - 전래된 한국의 미의식
강병우 외 지음 / 히스테리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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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을 떠올려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꺼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옥, 백자, 판소리, 굿, 한과 신명, 풍류.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표상들은 어느 순간 설명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그 자체로 한국을 증명하는 것처럼 기능한다. 그런데 그 목록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그것들이 선택되었고, 다른 것들은 빠졌을까. 익숙한 이름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순간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에는 많은 선택과 배제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숨은신』은 그 목록을 다시 펼쳐놓는 데서 시작한다.

이 책은 히스테리안이 기획한 공동 연구의 기록이다. 2024년 오픈콜을 통해 모인 열 명의 연구자·활동가·예술가가 2년 동안 각자의 삶과 작업을 연구의 현장으로 삼았다. 각자가 다른 대상을 고르고, 다른 자료를 찾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이론보다 연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엇을 들여다볼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부터 이미 한국미에 대한 판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미를 설명하는 익숙한 단어들이 조금씩 다른 의미를 얻는다. 『숨은신』이 다루는 한·신명·풍류는 한국인의 고정된 미적 특질을 설명하기 위해 태초부터 존재했던 개념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근대 이후 한국을 설명할 필요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언어이며, 그 과정에는 식민주의와 서구 근대성, 민족적 정체성을 둘러싼 시대적 요구, 미술 제도가 전통을 분류해온 방식이 함께 들어 있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무엇을 남기지 않을 것인지도 함께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찾아가는 대상에는 중심에서 오래 벗어나 있던 것들이 많다. 동학의 이름 없는 민중, 어린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진 역사, 재난과 애도, 기록되기 어려웠던 소리와 몸의 감각. 이들을 한데 묶어 ‘잊힌 것’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지금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는 순간 또 다른 해석이 덧붙기 때문이다. 『숨은신』은 그 문제를 피하지 않는다. 무엇이 기록되었는지만큼 누가 말할 수 있었는지, 어떤 경험이 역사로 인정받았는지도 함께 살핀다. 이 책에서 기억은 수동적인 저장 장치처럼 취급되지 않는다. 무엇을 계속 부를 것인지에 따라 남는 것이 달라진다. 한때 존재했던 소리는 발생과 동시에 흩어지고,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정리되지 않는다. 누군가 기록하고, 다시 듣고, 이름을 붙이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다음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숨은신’이라는 제목의 괄호는 이러한 책의 태도를 단순한 기호 하나로 압축한다. 신은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종교적 존재, 귀와 영, 인간과 자연 사이의 힘, 시대에 따라 달리 이해되어온 어떤 것까지 각자의 연구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괄호 안을 비워둔 덕분에 그 의미들은 서로 자리를 다툴 필요가 없다. 열 명의 연구자가 같은 책 안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빈 공간 덕분이다. 서로 다른 해석이 나란히 존재하는 상태 자체가 연구의 결과로 남는다.

『숨은신』을 읽고 나면 한국미에 관한 새로운 목록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목록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 오래 살아남았는지보다 그것을 누가 계속 불러왔는지가 중요해진다. 어떤 전통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라도 다시 찾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생기면 현재로 돌아올 자리를 얻는다.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한국미의 이름들을 다시 불러보고, 그 이름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을 찾아보고, 그것을 지금의 언어로 옮겨놓는 일.

전통은 저절로 다음 세대에 도착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기억하고, 말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사라짐과 지속 사이에는 그런 사람들의 시간이 놓여 있다. 『숨은신』은 그 시간을 2년에 걸친 공동 연구의 형태로 남겨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다시 불러 다음 시간으로 건넬 것인가.

✏️도서출판 히스테리안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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