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문학은 오랫동안 개인의 삶을 압도하는 시대를 기록해왔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에서 역사는 수많은 인간의 운명을 관통하는 거대한 힘으로 존재했고, 이후의 작품에서도 사회의 구조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였다. 그런 조정래가 등단 56년을 맞아 내놓은 『서리꽃』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다. 거대한 세계를 써온 작가가 마지막 장편에서 한 사람의 마음으로 시선을 좁혀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을 읽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시대의 큰 흐름을 따라가던 문학이 한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을 들여다보는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은 시와 그림에서 출발한다. 시를 쓰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라는 설정부터 이 작품의 사랑은 예술과 긴밀하게 맞물린다. 다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오늘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순진하고 때로는 유치하다. 대화의 어조나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에서도 오래된 연애소설의 문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유치함을 단순히 시대착오라고 밀어내기에는 묘한 진실이 있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실제로 평소보다 서툴고 과장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오빠, 어쩌려고 영원히를 맹세하는 거예요?”(2권 256쪽)라는 소인의 말에는 사랑의 모순이 그대로 들어 있다. 유한한 존재가 영원을 약속한다는 것. 사랑은 자신의 한계를 가장 잘 아는 인간이 그 한계를 잠시 잊는 사건이다.
다만 작품의 사랑이 언제나 현재의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사랑의 문법은 결혼과 임신을 둘러싼 두 사람의 생각에서도 드러난다. 여성이 자신의 예술적 삶을 내려놓는 방법으로 임신과 결혼을 상상하는 장면은 오늘의 독자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랑과 결혼을 바라보는 언어도 변했음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 낡은 문법 안에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서툰 마음만큼은 생생하다.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써온 조정래가 자신의 시대적 감각까지 품은 채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서리꽃』은 작품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을 함께 드러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랑의 무게는 감정의 크기보다 그것이 삶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드러난다. 재이는 소인의 삶에 닥친 불행 앞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고, 그녀가 다시 자신의 삶과 그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 사랑은 감정의 언어를 넘어 하나의 윤리가 된다. 레비나스가 타자를 향한 책임을 인간의 근원적인 윤리로 보았듯, 사랑 역시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재이는 소인의 선택을 대신하기보다, 소인이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갈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감당한다. 물론 사랑에는 늘 다른 얼굴도 있다.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상대의 선택까지 대신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재이의 사랑 역시 그 두 마음 사이를 오간다. 살리고 싶다는 마음과 존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사랑의 어려움이 생긴다.
이러한 사랑은 예술을 매개로 더욱 깊어진다. 소인에게 그림은 삶의 한 부분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랑과 삶에서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작품 후반부를 채우는 반 고흐의 그림과 생애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조정래는 반 고흐를 장식적인 소재로 두지 않고, 그의 삶과 작품을 두 사람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져온다. 가난과 고독, 예술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의 세계를 그려낸 반 고흐의 생애는 그림을 통해 삶을 견디려는 소인의 모습과 포개진다. 특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둘러싼 장면에서는 실제 풍경과 그림 속 풍경, 오래전 죽은 화가와 현재의 두 사람이 하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예술은 고통을 없애주지 않는다. 다만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건넨다. 니체가 예술에서 삶의 고통을 견디고 긍정하게 하는 힘을 보았듯, 소인에게 그림은 아픔이 존재하는 자리에서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두 사람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마다 고통의 시간은 잠시 다른 속도로 흐른다.
그래서 『서리꽃』에서 사랑과 예술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주제가 아니다. 두 사람을 이어준 것도 시와 그림이었고, 함께 나누는 가장 깊은 대화 역시 예술을 향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과 한 점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는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대상의 표면 너머에 있는 것까지 이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한 인간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일이고, 예술은 하나의 세계를 끝까지 바라보는 일이다. 조정래가 반 고흐의 그림을 두 사람의 사랑 사이에 오래 펼쳐놓은 까닭도 이러한 연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와 그림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통로이면서, 각자의 고통과 내면을 말없이 이해하게 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소인이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과 재이가 그 그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은 단순한 취미나 대화의 시간을 넘어선다. 두 사람은 예술을 통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까지 함께 나눈다.
그렇다면 ‘서리꽃’이라는 제목은 이 사랑의 시간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미지가 된다. 서리꽃은 추운 밤에 피어나 햇살이 닿으면 사라진다. 아름다움과 소멸이 한순간에 겹쳐 있는 꽃이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사랑은 삶의 가장 따뜻한 순간으로 찾아온 사랑이면서 동시에 유한한 시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사랑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모든 존재가 머물지 않는다는 뜻을 품고 있지만, 그 사실이 현재의 가치를 덜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라질 것을 아는 순간 지금이라는 시간이 선명해진다. 소인이 자신의 사랑을 서리꽃에 비유한 것도 그 사랑의 짧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짧은 사랑은 짧은 생과 닮아 있고, 그래서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더욱 농밀해진다. 사랑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시간이 행복했다는 기억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끝이 보이는 시간이었기에 두 사람에게 주어진 순간 하나하나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면 서리꽃의 이미지는 또 다른 형상으로 변한다. 처음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시와 그림이었고, 마지막에 남겨진 것은 하늘을 가르는 두 마리의 학이다. 조정래는 사랑의 시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봉인한다. 인간의 생은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넨 시간과 그 안에서 만들어진 세계까지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바라본 그림과 시, 나누었던 대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건넨 말과 손길은 한 사람의 생이 끝난 뒤에도 기억 속에서 다른 형태로 남을 수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남긴 흔적으로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의 학은 사랑의 결말을 설명하는 상징이면서, 사라짐 이후에도 남아 있는 관계의 형상을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읽힌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도 결국 그런 것일 테다. 사라지는 사람의 삶에서 한 장면을 건져 올려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형태로 남겨두는 것.
평생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을 바라본 조정래가 마지막 장편에서 붙잡은 것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시대의 거대한 사건도, 사회를 움직이는 구조도 결국 한 사람의 삶 위에서 경험된다. 거대한 시대의 문제에 비하면 너무 작아 보이는 일이지만 인간의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사랑하고 돌보고, 서로의 삶과 예술을 지켜보며, 주어진 시간만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한 사람의 선택과 감정, 누군가를 향한 책임과 애정이 모여 한 인간의 삶을 만들어간다.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을 오래 써온 조정래 문학의 시선이 마침내 가장 작은 단위의 삶에 도착한 작품.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사회와 역사의 문제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서리꽃』은 그 작고 사적인 삶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거대한 시대의 기록을 지나 한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며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가라는 물음으로 이동한다.
밤의 추위 속에서 피어난 꽃은 햇살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그 짧은 개화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리꽃이 아름다운 것은 오래 피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라질 운명 속에서도 한 번은 꽃의 형태를 이루기 때문이다. 조정래가 그려낸 사랑 역시 그러하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피어난 한 사람의 사랑이 다른 한 사람의 삶에 하나의 세계를 남기는 것. 사랑의 시간은 언젠가 끝나지만, 그 시간 동안 서로에게 건넨 마음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을 약속할 때보다 오히려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할 때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서리꽃』이 보여주는 사랑도 바로 그 유한함 속에서 가장 뜨겁게 빛난다. 짧았기에 덜 중요한 사랑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삶의 많은 것을 담아낸 사랑이다. 조정래 문학의 마지막 장편이 향한 곳은 결국 그토록 작고 뜨거운 인간의 시간이다.
✏️도서출판 해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