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벨 ㅣ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6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채단비 옮김 / 레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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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리고 그 순간이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행복은 여전히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제자벨』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한 여자의 현재에서 출발해, 그녀가 평생 지키려 했던 젊음과 아름다움, 사랑의 시간을 거꾸로 더듬어간다. 예순 살의 글라디스 아이제나흐에게 스무 살 청년의 죽음은 단순한 범죄 사건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 뒤에는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한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른 사람의 삶까지 잠식해가는 과정이 놓여 있다.

글라디스에게 아름다움은 삶의 한 부분을 넘어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일보다 훨씬 가혹하다.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사라지고, 그 시선으로 유지해온 자아까지 흔들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라디스는 자신의 나이를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딸의 나이까지 실제보다 어리게 말한다. 딸의 나이는 곧 자신의 나이를 증명하는 숫자이고, 딸의 성장은 자신이 젊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인 까닭이다. 어머니에게 딸은 사랑해야 할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울이 된다. 글라디스가 견디지 못한 것은 늙은 얼굴보다 자신이 더 이상 과거의 그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글라디스의 가장 큰 적은 다른 여자도, 젊은 남자도, 새로운 사랑도 아니다. 그녀가 평생 맞서온 것은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이길 수도, 설득할 수도,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지나간 계절을 다시 불러낼 수 없듯 한때의 아름다움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글라디스는 자신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흘려보내지 못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현재에 붙잡아두려 하고, 변해가는 관계를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자신의 나이를 지우기 위해 딸의 시간까지 지워버리는 행동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자신의 시간을 거부하기 위해 타인의 시간을 훼손하는 것. 유한한 인간이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할 때 욕망이 얼마나 기묘한 형태를 취하는지를 네미롭스키는 이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글라디스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반드시 막아야 할 벽이었다. 그 순간부터 삶은 살아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일이 된다.

그녀의 사랑 역시 이 시간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라디스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욕망받는 자신, 누군가의 사랑을 독점하는 자신, 여전히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관계이지만, 글라디스에게 사랑은 자아를 확인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진다.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대를 붙잡으려는 욕망으로 이어지고,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상대의 삶까지 자신의 욕망 안에 가두려는 방식으로 변한다. 글라디스에게 사랑은 그래서 아름다운 동시에 잔인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두려운 만큼, 사랑받고 있는 자신을 잃는 일도 두렵기 때문이다. 사랑의 중심에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이 크게 자리할 때,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감정에서 가장 잔인한 소유욕으로 미끄러져간다.

그런데 글라디스에게 붙여진 이름은 처음부터 그녀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제자벨(Jézabel)’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페니키아 출신 왕비 이세벨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권력과 우상숭배, 파괴적인 여성성의 표상으로 읽혀온 인물이다. 네미롭스키가 불러온 제자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라신의 비극 『아탈리』에서 제제벨은 죽은 뒤 딸 아탈리의 꿈에 나타난다. 죽음을 앞두고도 화려하게 치장했던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어머니의 유령이다. 네미롭스키의 『제자벨』 역시 이 라신의 장면을 직접 호출한다. 연구자 비엔베니도 모로스 메스트레스는 『제자벨』과 『아탈리』의 관계를 분석하며, 네미롭스키의 소설이 성서의 제제벨과 라신이 다시 만들어낸 제제벨의 형상을 하나의 문학적 계보 안에서 연결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제목 속 제자벨은 한 악녀를 가리키는 이름을 넘어선다. 딸 앞에 유령으로 돌아오는 어머니,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놓지 않는 여성, 그리고 자신의 젊음을 잃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글라디스가 하나의 형상 안에서 포개진다. 제목을 알고 나면 글라디스가 바라보는 거울 역시 오래된 문학적 기억을 비추는 장치처럼 읽힌다.

이 지점에서 『제자벨』은 네미롭스키 개인의 한 작품을 넘어 작가가 반복해서 천착했던 모녀 관계의 계보 안으로 들어간다. 『무도회』와 『적』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네미롭스키는 딸이 여성으로 성장하는 순간과 어머니의 노화가 충돌하는 관계를 집요하게 그려냈다. 테레사 마누엘라 루소네는 이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네미롭스키의 소설 속 이기적인 어머니들에게 딸의 성장은 곧 자신의 늙음을 알리는 징후이자 사회적 위치를 위협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양상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딸이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과 어머니가 자신의 자아를 지키려는 욕망이 서로 얽히면서 모녀 관계는 애정과 적대 사이를 오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라디스와 딸의 관계는 훨씬 복잡해진다. 딸은 어머니의 젊음을 이어받는 존재이지만, 글라디스에게 딸은 자신의 젊음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모녀는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면서 서로의 시간을 확인시키는 존재가 된다. 딸이 한 사람의 여성으로 성장할수록 어머니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멀리 흘러왔는지를 확인한다. 그 순간 모성은 보호와 통제 사이에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에게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어떤 어른이 되어갈까. 네미롭스키가 반복해서 파고든 모녀의 비극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사람을 반드시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대한 갈망을 더욱 깊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을 잃는 일이 곧 자신의 존재를 잃는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에게 사랑은 쉽게 집착과 소유의 형태를 취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견디지 못한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삶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제자벨』의 글라디스를 단순히 허영심 많고 잔인한 여성으로 읽는 순간 작품의 비극은 오히려 작아진다. 그녀의 선택은 분명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만, 그 선택의 밑바닥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이 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아름답고 싶다는 마음,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행복했던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 네미롭스키의 인물들은 이러한 욕망을 극단적인 형태로 품는다. 그리고 욕망이 삶을 움직이는 힘을 넘어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던 것까지 훼손한다. 『제자벨』의 냉정함은 악인을 심판하는 데 있지 않다.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이 어느 순간부터 얼마나 비인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끝까지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화려한 사교계와 가족이라는 친밀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허영과 자기기만을 해부하는 네미롭스키의 소설 세계에서, 사랑은 언제든 욕망의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

영원한 행복이라는 말에는 처음부터 모순이 들어 있다. 행복이 영원하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될 것이고, 사라질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는 한때의 행복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완벽했던 순간은 언젠가 지나간다. 젊음도, 아름다움도, 사랑도, 지금의 나 역시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면 행복의 반대편에는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놓여 있는 셈이다. 행복했던 순간을 붙잡으려 할수록 그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고,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 할수록 지금 살아 있는 시간까지 잃게 된다. 『제자벨』은 바로 그 역설을 한 인간의 삶 전체에 새겨놓는다.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결국 끝을 앞당기기도 한다는 것. 사라질 것을 사랑하는 능력을 잃는 순간, 사랑은 소유가 되고 아름다움은 집착이 되며 행복은 자신을 파괴하는 힘으로 변한다.

완벽했던 순간은 언젠가 지나간다. 그것은 행복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이다. 젊음이 지나갔다는 이유로 그 시절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사랑이 끝났다는 이유로 사랑했던 시간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네미롭스키가 바라보는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제자벨』 역시 젊음을 잃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소설이라기보다, 젊음이 지나가고 사랑이 변하고 행복이 끝나는 순간에도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만,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글라디스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늙음 그 자체보다 행복했던 자신이 더 이상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비극은 한 여자가 젊음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넘어, 지나간 행복을 현재에 영원히 붙잡아두려 했던 인간이 스스로 그 행복의 자리에서 멀어져간 이야기로 읽힌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제자벨』은 한 시대의 상류사회를 그린 소설을 넘어, 시간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빼앗고 인간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욕망할 수 있는지를 묻는 네미롭스키의 초상으로 완성된다.

행복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조차 시간을 품고 있다. 한때의 젊음도, 사랑도, 자신을 바라보던 수많은 시선도 결국 지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아름다움은 축복에서 족쇄로 모습을 바꾼다. 이렌 네미롭스키의 『제자벨』은 그 변화를 한 여성의 삶과 욕망을 통해 포착하는 소설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자아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의 불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소유와 집착으로 기울어가는 순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상처를 되돌려주게 되는 인간의 모순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프랑스 문학 특유의 냉정하고 우아한 시선 속에서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해부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네미롭스키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레모가 오랜 시간 한 작가의 작품을 한 권씩 국내에 소개해온 여정도 함께 돌아보기를 권한다. 『무도회』에서 시작해 『제자벨』을 거쳐 『고독의 와인』에 이르기까지. 레모가 꾸준히 펼쳐온 네미롭스키의 세계가 이번 선집을 통해 하나의 윤곽을 갖추었다. 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여러 권의 책으로 천천히 따라가는 일은 작품 하나를 읽는 것과 또 다른 독서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프랑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오래된 작품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건네는 레모의 행보 역시 반가울 것이다. 한 사람의 상처가 어떻게 문학이 되고, ,그 문학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독자의 손에 도착하는지를 지켜보는 일. 레모의 네미롭스키 선집은 그 시간을 한 권씩 이어 붙여왔다. 이번 완간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도서출판 레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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