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희성의 『기억의 무늬』는 안면인식장애를 지닌 한 인물의 미제 사건 추적을 통해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전복한다. 프랑스의 패션학교에서 공부하는 카미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대신 옷감의 질감과 걸음걸이, 신발의 형태, 향수의 종류, 손때가 묻은 자리처럼 타인이 쉽게 지나치는 감각적 정보로 사람을 구분한다. 작가는 카미의 관찰을 놀랄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인간이 타인을 인식하는 가장 익숙한 방식인 얼굴을 대신해 다른 감각들이 들어선다. 카미에게 사람은 얼굴이 아니라 하나의 촉감이고, 걸음의 리듬이며, 몸에 밴 냄새다.

이러한 감각의 전환은 곧 기억의 문제로 이어진다. 카미에게 사람의 표정은 ‘결코 열어 볼 수 없는 책’(179쪽)과 같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말만 듣지 않는다. 미세하게 변하는 표정과 눈빛,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말로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짐작한다. 하지만 카미에게 그 책은 처음부터 닫혀 있다. 그렇다고 그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옷을 입는 습관과 걸음걸이, 몸에 밴 냄새와 손의 움직임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을 읽어낸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얼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굴 너머의 감각까지 읽어낼 때, 카미에게 사람의 윤곽은 비로소 선명해진다. 카미의 감각은 시각이 닿지 못하는 세계를 읽어내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기억의 무늬』 속 기억은 머릿속에 보관된 과거의 기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된 옷과 가구, 천의 주름과 닳은 자리,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체취에도 과거가 남아 있다. 사람은 떠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지워가지만, 자신이 사용했던 물건에는 생활의 흔적을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낡은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두는 유일한 매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이 작품에서 아기침대와 독특한 질감의 천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사물은 말하지 않지만, 말보다 오래 기억한다. 의식적으로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어떤 냄새나 촉감이 오래전의 한순간을 현재로 데려오는 것처럼, 손끝에 남은 감각은 시간이 지운 장면을 다시 불러낸다. 기억은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몸과 사물 사이에도 흔적을 남기며 이어진다.

그렇다면 기억은 얼마나 정확해야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카미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완벽하게 재현한 장면이 아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특정한 감촉과 몇 개의 이미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의 조각이다. 그는 그 조각을 하나씩 더듬으며 과거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기억은 사건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하는 사람의 현재가 과거에 스며들고, 하나의 감각에 붙어 있던 의미 역시 달라진다. 처음에는 공포를 불러왔던 흔적이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기억 속 해석은 달라질 수 있어도, 그때의 감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카미의 손끝에 남은 것은 분명 실제였고, 새로운 사실이 더해질 때마다 같은 흔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카미가 오랫동안 붙잡아온 기억은 진실을 가리는 동시에, 그 진실을 향해 나아갈 단서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실이 더해질수록, 같은 흔적에도 다른 의미가 깃든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사랑이 놓여 있다. 이 작품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진 속 얼굴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옷에 밴 체취와 오래된 가구, 손길이 닿았던 물건처럼 아주 사소한 흔적들이 한 사람의 부재를 대신한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져가는 흔적을 붙잡으려는 행동은 사랑이 무엇을 향하는 감정인지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면 그 사람이 남긴 것을 돌보는 일, 사라지는 냄새를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려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방식으로 한 사람의 흔적을 지켜내는 일. 사랑은 때때로 이런 모습으로 남는다. 동시에 사랑에는 죄책감도 따라붙는다. 너무 오래 자신을 탓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망설이게 된다.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상대의 삶에 들어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사랑은 다정하기만 하지 않다. 그 안에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에게 내리는 판단,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함께 놓여 있다. 때로 사랑은 다가가는 용기보다 물러서야 하는 이유를 더 오래 품기도 한다.

결국 카미가 발견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미 존재했던 감각의 의미다.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을 원망했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가진 다른 감각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보지 못해서, 더 느낄 수 있다는 것”(300쪽)이라는 깨달음은 단순한 위로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감각을 결핍으로 여겨왔던 카미가 그 감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다. 볼 수 없었던 세계에는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흔적들이 있었고, 그 흔적들은 결국 기억으로 이어졌다.

‘기억의 무늬’라는 제목은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의 형태를 닮았다. 기억은 선명한 사진처럼 남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닳고, 어떤 부분은 흐려지고, 어떤 부분에는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진다.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이 만졌던 것, 입었던 것, 사랑했던 것에는 시간이 남는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보다 그 시간을 증명하는 흔적을 오래 간직한다. 백희성은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 이 감각을 촘촘하게 새겨 넣는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추적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과 사랑을 향한다. 어떤 기억은 눈보다 손끝에 오래 남고, 어떤 사랑은 사람의 얼굴이 사라진 뒤에도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을 통해 계속 살아간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많은 것들이 남는다. 한때 몸을 감싸던 옷의 질감, 매일 손이 닿던 가구의 표면,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는 냄새까지. 『기억의 무늬』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한 사람의 존재를 더듬어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감각으로 세계를 읽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평범한 사물에 깃든 시간과 기억을 발견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두는 독자라면 이 작품의 손끝을 따라가 볼 만하다. 미스터리의 긴장 속에서 기억과 진실의 관계를 생각하고 싶은 독자, 상실과 죄책감 속에서도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지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잘 어울린다. 얼굴을 잃어버린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 추적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일은 그 사람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만 있지 않다. 그가 만졌던 것과 사랑했던 것, 남겨놓은 작은 흔적들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도 기억은 깃든다. 그리고 때로 그 흔적들은 시간이 지운 얼굴보다 더 오래 한 사람을 말해준다.

✏️소정의 원고료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