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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블루스 ㅣ B사이드 아카이브 1
슬리만 카데르 지음, 이수원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6월
평점 :
파본은 책의 내용과 무관한 결함이다. 모서리가 찍히거나 페이지가 접혔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션 블루스』를 읽으며 이 사소한 결함이 작품 속 ‘결핍’과 묘하게 겹쳐 보였던 것은 그래서다. 사회는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흠집을 매긴다. 출신과 국적, 가난과 직업을 이유로 누군가를 더 낮은 자리로 밀어내고, 그 흔적을 능력의 부족처럼 취급한다. 파리 변두리에서 성장한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들 왐 역시 그런 분류에서 자유롭지 않다. 카리브해의 초호화 유람선 오션킹에 올라 그가 처음 맡은 일은 가장 낮은 단계의 잡역부 ‘조커’. 그러나 작품은 왐의 결핍을 극복해야 할 흠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출신과 환경이 어떻게 사회적 위치로 번역되는지를 보여주며, 그 위치에 붙은 이름이 인간의 가능성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오션킹은 이 작품의 배경인 동시에 하나의 사회적 모형이다. 수천 명의 관광객이 햇빛과 바다를 소비하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훨씬 많은 노동자가 배를 유지한다. 객실을 청소하고, 하수관을 뚫고, 수영장과 기관실을 관리하고, 공연이 끝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처럼 관광객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는 노동이 유람선의 화려한 풍경을 지탱한다. 여기서 ‘바다 위’와 ‘바다 아래’는 단순한 공간의 차이를 넘어 계급적 위치를 가리킨다. 누구에게는 바다가 휴양의 풍경이지만 누구에게는 하루 종일 닿지 못하는 천장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더욱 냉정한 것은 그 노동의 분배마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적과 인종, 출신에 따라 맡게 되는 일이 달라지고, 유럽인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의 업무를 맡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출신 노동자들은 주방과 세탁, 청소 같은 업무에 집중된다. 오션킹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인 동시에, 출생과 국적이 직업과 계급으로 번역되는 축소된 사회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수많은 편리함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깨끗한 공간에는 청소하는 사람이 있고, 정돈된 식탁에는 그것을 준비한 사람이 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하루의 뒤편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끊임없이 작동한다. 『오션 블루스』는 그 결과만 소비하던 시선을 과정으로 돌려놓는다.
이 지점에서 작품의 ‘소설적 르포르타주’라는 성격이 선명해진다. 르포르타주는 현실의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식이며, 이 작품의 현실성은 작가 슬리만 카데르의 이력과 맞물려 있다.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들로 파리 근교에서 성장한 작가는 실제로 카리브해의 호화 유람선에서 잡역부로 일했다. 그의 경험은 책 속 노동을 추상적인 사회 비판의 언어에서 현실의 감각으로 끌어내린다. 강력한 살충제, 막힌 하수관, 쌓여가는 음식 재료, 공연 뒤에 남은 오물 같은 구체적인 사물과 육체의 감각이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작가는 노동자를 불쌍한 존재로 전시하는 대신, 화려한 관광 산업이 유지되는 과정을 그 내부에서부터 보여준다. 더구나 왐의 거칠고 경박한 언어와 빠르게 치고 나가는 문장은 이 세계를 지나치게 엄숙한 비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웃음은 현실을 희석하기보다 그 현실을 견디는 사람의 감각을 보존한다. 르포르타주가 현실을 기록하는 장르라면, 카데르는 그 현실에 살아 있는 인간의 목소리를 입힌다. 그래서 오션킹의 밑바닥은 통계나 보고서 속 숫자로 남지 않고, 냄새와 소음과 땀과 욕설이 뒤섞인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조커’라는 직책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적인 이름이다. 조커는 유람선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잡역부다. 정해진 전문 업무 없이 사람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투입되는 자리이기에, 사회적 위계만 놓고 보면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바로 그 불안정성이 왐에게는 이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나의 업무에 고정되지 않기 때문에 배의 여러 영역을 경험하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카드 게임의 조커가 특정한 패에 고정되지 않고 다른 카드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듯, 왐 역시 하나의 자리로 규정되지 않는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가장 많은 위치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바꾸어간다는 점에서 조커는 단순한 직책명이 아니라 이 작품이 바라보는 인간의 형상을 상징한다.
사회는 인간을 출신과 직업, 국적과 계급으로 분류하지만 삶은 그 분류표만큼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 작품은 그 가능성을 손쉬운 성공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왐의 이동에는 노동과 능력만큼이나 우연과 운이 작용하고, 위로 올라간 뒤에도 그 자리가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성공을 개인의 의지로만 설명하는 서사가 지워버리는 것은 바로 이 불확실성이다.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서지 않으며,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서 같은 곳에 도착하지도 않는다. 갑판의 높이가 인간의 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가 생각보다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이 유람선의 풍경 아래에 놓여 있다.
파본된 책은 완벽한 상태의 책에서 밀려난 흔적을 지닌다. 그렇다고 그 책의 가치까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션 블루스』가 바라보는 사람의 삶도 그와 닮았다. 사회가 결함으로 분류한 출신과 가난, 실패와 결핍은 한 사람을 설명하는 조건일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흔적을 가진 채 어디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삶의 형태는 달라진다. 오션킹 역시 그렇다. 햇빛을 받는 사람과 그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계급적 차이가 있지만,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갑판 위의 화려함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를 움직이는 수많은 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배에 타고 있다’는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적어도 내가 서 있는 갑판 아래에 누가 있는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금 찍힌 책 한 권이 오히려 그 책만의 흔적을 갖게 되듯, 인간의 삶 역시 흠을 지운 뒤에야 온전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바다를 건너면서도 서로 다른 갑판에 서 있는 사람들. 『오션 블루스』는 그 높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결국 하나의 배를 움직이는 것은 그 차이 아래 묵묵히 이어지는 수많은 삶이라는 사실을 기록한다.
바다 위에는 햇빛이 있고, 그 아래에는 그 햇빛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오션 블루스』는 화려한 유람선의 갑판에서 시선을 거두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노동은 국적과 피부색에 따라 나뉘고, 사람의 출신은 직업의 이름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이 책은 보이지 않는 노동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이민과 계급의 경계를 문학으로 읽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실제 유람선 노동 경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거친 농담과 속도감 있는 문장 속에서 펼쳐지는 만큼, 르포르타주와 소설의 경계가 궁금한 독자나 정해진 성공의 궤도에서 벗어난 성장담을 찾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누구나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같은 갑판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조차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우연과 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유쾌하면서도 집요하게 기록한다. 바다를 건너는 동안 사람의 자리를 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자리는 정말 자신의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한 권이다.
✏️도서출판 니케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