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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평점 :
깨진 토기 하나, 그을린 돌 하나, 오래된 뼈 한 조각에도 누군가의 하루와 문명이 숨어 있다. 고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시절 한 번쯤 품어보았을 낭만이 떠오른다. 땅속에 묻힌 유물을 찾아내고, 오래전 사라진 문명의 비밀을 밝혀내는 사람들. 샘 킨의 『실험하는 고고학자』는 그 낭만적인 상상을 조금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유물을 찾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유물이 어떤 손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몸을 거쳐 사용되었는지 직접 실험하며 과거에 다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고학자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삽이 아니라 호기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약 7만 5천 년 전 아프리카에서 1500년대 멕시코까지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책은 돌을 깨고, 음식을 만들고, 배를 띄우고, 무기를 던지고, 치료법과 생활 기술을 재현하는 실험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명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남겨진 흔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흔적이 말하는 바를 직접 확인해보려는 태도다.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과학적인 방법을 만날 때, 과거는 박물관의 유리장 안에 놓인 유물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의 대상으로 옮겨간다.
오래된 돌 하나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직접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어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일 것이다. 나에게는 산책하다가 주워온, 단면이 날카롭게 깨진 돌이 하나 있다. 택배를 뜯는 데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돌이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쥐지만, 이것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노동이 필요했을까. 책 속 실험고고학자들은 바로 이런 의문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과거의 기술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고, 사용해보고, 실패하면서 유물에 남은 형태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제작 과정과 사용의 감각을 살핀다. 그러면 박물관의 유물에 붙어 있던 설명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것이 드러난다. 기술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편리해 보이는 도구 하나에도 몸의 감각과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 있었다. 유물의 형태를 인간의 노동으로 되돌려놓는 순간, 과거의 인간은 막연한 ‘원시인’이나 특정 문명의 이름만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실패를 견디며 방법을 찾아냈던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때 실험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과거에 관한 지식을 검증하는 방법이 된다. 고대의 방식으로 빵을 굽고 맥주를 만들며, 폴리네시아의 항해 기술을 살피고, 로마의 생활 기술을 재현하고, 오래된 치료법을 시험하는 과정에서는 성공만큼 실패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상했던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대한 설명 역시 다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해보는 과정에서 책이나 유물만 바라볼 때는 보이지 않던 노동의 양과 기술의 정교함이 드러나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역사적 설명 속에 얼마나 많은 추론과 가정이 들어 있는지도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지식은 이미 완성된 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흔적과 그 흔적을 해석하는 수많은 시도 위에 세워져 있다. 실험은 그 가설을 실제 세계에 가져와 움직여보는 일이며, 실패까지 포함해 과거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조정하는 과정이다.
역사책에는 연도와 사건이 남고, 박물관에는 도구와 유물이 남는다. 그러나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의 손에 전해졌던 진동이나, 불 앞에서 흘렸을 땀, 갓 구운 빵의 냄새, 낯선 바다 위에서 느꼈을 두려움까지 기록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눈으로만 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는다. 먹고, 만지고, 듣고, 냄새 맡고,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실험고고학이 복원하는 것은 기술의 기능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했던 몸의 경험이기도 하다. 책이 고대 문명의 소리와 냄새, 맛까지 되살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역사를 시각적인 기록에서 오감의 경험으로 넓히는 순간, 문명이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생활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이루었는지와 더불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만들며 어떤 감각 속에서 하루를 보냈는지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를 되살리는 일에는 언제나 닿을 수 없는 부분이 남는다. 이 책에서 실제 고고학 실험에 관한 이야기와 작가가 상상한 짧은 역사적 이야기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 역시 그런 한계를 보여준다. 실험은 “이것이 실제로 가능했는가”를 묻고, 상상은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를 그려본다.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불러낼 수 없다. 남겨진 흔적을 살피고, 가능한 방법을 실험하고, 그 사이의 빈 곳을 조심스럽게 상상하면서 사라진 세계의 모습에 다가갈 뿐이다. 고고학이 다루는 것은 결국 사라진 세계의 잔해이므로, 그 세계에 대한 설명에는 필연적으로 해석이 개입된다. 그래서 이 책의 실험은 과거를 확정하는 방법이라기보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상상을 더 단단한 근거 위에 올려놓는 방법으로 읽힌다. 과학과 상상은 서로 멀리 떨어진 영역처럼 보이지만, 사라진 시간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서로의 빈 곳을 메우며 함께 작동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은 오래된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되살아나는 것은 물건보다 사람이다. 돌도끼를 만든 손, 빵을 굽던 손, 바다를 바라보던 눈, 상처를 치료하던 손길, 몸에 문신을 새기던 피부. 유물은 그들의 삶에서 아주 작은 일부만을 남겼지만,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문명의 역사는 다시 인간의 역사로 좁혀진다. 피라미드나 로마의 도로, 폴리네시아의 항해와 아즈텍의 의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곳에,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몸과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도 결국은 수많은 사람이 반복해서 움직인 하루들 위에 세워진다. 실험고고학은 바로 그 하루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를 거대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손과 발, 음식과 도구, 피로와 감각이 있는 생활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호기심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동안 세상은 편리해지지만, 동시에 이상한 일이 줄어든다. 어린 시절에는 돌 하나만 주워도 이것저것 궁금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그냥 돌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진다. 질문하기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험고고학자들은 아주 오래된 돌 하나 앞에서도 멈춰 선다.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을까. 직접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궁금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몸을 움직이고, 실패를 반복한다. 고고학자의 낭만을 오래된 유물이나 잃어버린 문명에서 찾는다면 이 책이 보여주는 낭만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흔적 앞에서 멈춰 서는 마음,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다시 의문을 품는 태도, 사라진 시간을 향해 호기심을 보내는 사람의 자세에 있다.
『실험하는 고고학자』는 그렇게 과거를 탐험하는 책인 동시에, 현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을 되돌려놓는 책이다. 깨진 돌 하나에도 누군가의 손이 있었고, 오래된 음식 하나에도 한 사람의 하루가 있었으며, 지금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는 도구에도 처음 그것을 만들었던 누군가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과거는 먼 곳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다시 낯설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오래된 돌 하나를 손에 쥐고 그것이 누군가의 손에서 어떻게 태어났을지 상상하는 순간, 지나간 시간은 박물관의 유리 너머에서 조금씩 걸어 나온다. 고고학과 역사에 오래된 문명의 낭만을 품어온 사람이라면, 그리고 과학을 공식과 숫자보다 직접 해보고 실패하며 알아가는 이야기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의 실험들이 꽤 근사한 모험이 되어줄 것이다. 특히 도구와 음식, 몸과 노동처럼 거대한 역사 뒤에 가려진 생활의 흔적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한 시대가 전혀 다른 질감으로 펼쳐진다. 어린 시절 돌멩이 하나에도 이유를 붙이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왜?”를 붙였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이 책이 되살리는 것은 오래된 문명만이 아닐 것이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익숙해진 탓에 잠시 잊고 있던, 세상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능력까지 함께 꺼내 보여주는 책이다.
✏️도서출판 해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