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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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평소에는 신호를 지키고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이 운전대를 잡는 순간 욕설을 내뱉고, 경적을 울리고, 상대를 쫓아가 보복하려 한다. 출판사가 이 소설을 ‘로드 레이지 스릴러’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로드 레이지는 운전 중의 단순한 짜증이 분노와 공격적인 행동으로 번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잠들면 눈뜬다』는 그 짧은 순간,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며 일상의 도로가 폭력의 공간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공포를 시작한다.

분노는 혼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난폭한 행동은 또 다른 사람의 분노를 부르고, 그 분노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 처음에는 경적 한 번, 욕설 한마디였던 것이 보복 운전이 되고, 위협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폭력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보면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한 사람의 성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타인의 분노가 나의 분노가 되고, 나의 분노가 다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순간, 폭력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하나의 흐름이 된다. 작품 속 미아즈마가 인간의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설정이 섬뜩한 것도 그래서다. 인간에게 이미 자리한 감정은 작은 자극 하나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어느 순간 한 사람의 마음을 넘어 다른 사람의 삶까지 집어삼킨다.

괴물을 인간의 바깥에만 두고 바라보면 이 소설은 그저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룬 스릴러로 남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이미 분노와 증오, 폭력성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있고,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어둠이 어떤 순간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괴물’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 고야의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처럼, 이 소설에서 두려운 것은 괴물이 눈을 뜬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 괴물이 인간의 모습으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생각에 닿고 나면 ‘무영’이라는 이름도 문득 다르게 읽힌다. 작가가 실제로 그림자를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그림자가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그림자가 없는 인간은 과연 온전한 인간일까. 빛을 받는 모든 것에 그림자가 생기듯, 인간에게도 감추고 싶은 마음과 인정하기 어려운 어둠이 있다. 선한 인간이란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알고도 그것이 자신의 전부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분노할 이유가 있어도 폭력을 선택하지 않고, 상처받았어도 같은 상처를 타인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 괴물이 눈을 뜨는 순간에도 인간으로 남는 일은 어쩌면 그런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악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미아즈마는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고, 인간의 분노 역시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절망으로 닫히지 않는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남겨둔다. 악이 없는 세계에서 선을 선택하는 일보다,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선을 선택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분노를 폭력으로 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어쩌면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은 악이 없는 마음이 아니라, 악을 마주한 순간에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도로 위에서 우리는 매일 이름 모를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잠깐의 짜증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폭력이 될 수 있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때 무엇을 눈뜨게 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잠들면 눈을 뜨는 것이 있다. 그것은 괴물일 수도, 인간일 수도 있다.

괴물이 사라졌다고 해서 도로가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경적을 울리고, 누군가는 사소한 끼어들기에 이를 악물며,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던질 준비를 한다. 『잠들면 눈뜬다』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숨어 있던 폭력의 얼굴을 끌어올린다. 익숙한 도로가 어느 순간 공포의 무대로 변하는 로드 레이지 스릴러를 찾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질주를 즐길 수 있을 것이고, 인간의 선량함보다 그 이면에 감춰진 분노와 폭력성에 오래 시선을 두는 독자라면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특히 일상의 틈에서 서서히 광기가 번져가는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모든 악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결말보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세계 어딘가에 불온한 기척이 남아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면 이 소설은 꽤 오래 달려갈 만한 길이 되어줄 것이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괴물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괴물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이다. 어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을 품고도 다른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사람. 그 선택이 가능한 인간을 믿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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