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크라이시스 - 색과 재난에 관한 다섯 편의 소설 ㅣ 앤솔러지 느슨 2
공현진 외 지음 / 상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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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떠올려보자. 대개 거대한 풍경이 먼저 머리를 스친다. 도시를 집어삼키는 화재와 홍수, 땅을 뒤흔드는 지진, 뉴스 속 속보 자막처럼 삶을 단숨에 갈라놓는 사건들. 그러나 삶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재난은 훨씬 작은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관계를 무너뜨리고, 이해받지 못한 기억 하나가 오랜 시간을 붙들며, 상실은 아무 일 없던 하루의 색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앤솔러지는 그 작고 사적인 흔들림을 재난이라 부른다. 재난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비극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한 번쯤 마주하는 흔들림이 곧 재난이라는 사실을 이 앤솔러지는 다섯 가지의 색으로 펼쳐 보인다.

작품마다 재난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전쟁 밖으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 꿈을 품은 채 생계를 버텨야 하는 사람, 말하지 못한 죽음의 이야기를 대신 기록하는 사람, 기후 재난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 평범함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을 잃고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 하나같이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재난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맞서는 대상은 재난 그 자체보다도, 재난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다. 무너지는 순간보다 무너진 뒤를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공현진의 「오렌지나 망고」에서 화자는 전쟁 후유증 속에 갇혀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삶을 가엾게 여길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다섯 작품을 하나로 엮는 문장처럼 읽힌다. 우리는 이해를 관계의 도착점처럼 여길 때가 많다. 상대를 이해해야 비로소 화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관계는 실패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타인의 삶은 언제나 자신의 경험 바깥에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전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은 사람이 상실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누군가의 절망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끝내 닿지 않는 영역을 품고 있다. 삶은 설명되는 순간보다 설명에서 흘러넘치는 순간이 훨씬 많다. 타인을 이해했다는 확신은 때로 그 사람을 자신의 기준 안으로 가두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해란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컬러 크라이시스』가 보여주는 관계 역시 이해의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기. 그 조심스러운 머무름은 서로를 하나의 존재로 남겨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작품집이 품고 있는 힘은 이해의 결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음을 견디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피어난다. 작품 속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곁을 지킨다. 말을 건네고, 기록하고, 기다리고, 함께 머문다. 누구도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상처를 없애 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곁에 머무는 일은 가능하다. 이해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이어진 관계가 조금씩 이해를 닮아 가는 것임을 이들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는 반복해서 대피할 자리가 등장한다. 지진을 대비해 마련한 공간처럼 삶에도 저마다의 피난처가 필요하다. 인간은 재난을 막을 수 없다. 대신 잠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은 어떤 때에는 식탁 아래가 되고, 어떤 때에는 한 권의 소설이 되며, 함께 가꾸는 텃밭이 되거나,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길이 되기도 한다. 재난이 삶에서 사라지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삶은 흔들림을 지운 뒤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을 품은 채 계속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난을 피하는 법보다 그 안에서 머무는 법을 먼저 배운다. 서로에게 잠시 기댈 자리를 내어 주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일 것이다.

제목에 담긴 ‘컬러’는 재난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같은 재난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빛깔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언어다. 누군가에게는 붉은 전쟁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벽 직전의 푸른 빛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막 위에 피어난 해바라기의 노란색일 것이다. 재난은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는다. 삶의 수만큼 다른 색을 띠고, 그 색만큼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흔든다.

『컬러 크라이시스』는 재난을 견뎌 내는 법을 가르치는 소설집은 아니다. 대신 타인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래서 관계는 완성을 향하기보다 지속을 향해 나아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를 구원하지도,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 주지도 못한다. 다만 상대가 홀로 무너지지는 않도록 자신의 자리를 조금 내어 준다. 재난은 그렇게 삶의 한가운데를 오래 지나간다. 그 시간을 함께 지나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삶은 다시 무너지지 않는다.


재난은 언제나 사건의 크기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오래전 들은 말 한마디로 남고, 어떤 것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하루를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인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세상을 뒤흔드는 비극보다 사람 안에 오래 머무는 흔들림을 바라본다. 타인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 거리를 좀처럼 좁힐 수 없었던 사람, 상실 이후에도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 거대한 사건보다 일상의 미세한 감정을 오래 들여다보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깊게 읽힐 작품이다. 성급한 위로나 손쉬운 해답을 내놓기보다, 서로의 삶을 모두 알 수 없어도 같은 시간을 건너는 일은 가능하다고 이 앤솔러지는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섣불리 재단하지 않은 채 곁을 내어 주는 일인듯 하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색을 품고 있지만, 그 색들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 시대의 재난이 어떤 얼굴이 아니라 어떤 시간으로 살아지는지를 보여 준다.

✏️도서출판 상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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