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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괴물의 시간
마크 해던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7월
평점 :
평온해 보이는 풍경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찢어놓은 표지처럼, 『개와 괴물의 시간』은 익숙한 세계에 작은 금 하나를 낸다. 신화와 디스토피아, 현실과 우화를 오가는 여덟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시선으로 모인다. 그 시선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존재, ‘괴물’을 향한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괴물을 낯선 존재로 그려내는 대신,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괴물을 만들어 왔는지를 바라본다.
신화 속 괴물은 인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마크 해던은 그 오래된 신화를 다시 펼치며 시선을 바꾼다. 미궁 속에 갇힌 아이는 처음부터 괴물이었는지, 아니면 괴물이라는 이름 아래 평생을 살아야 했기에 괴물이 되어 갔는지 되묻게 만든다. 학교에서는 평범한 아이들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폭력을 일상의 언어로 익혀 간다. 핵전쟁 이후의 폐허에서는 국가가 인간을 숫자처럼 다루고, 저주받은 사냥꾼도, 영원을 견디는 노인도, 황야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도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한다. 타인의 시선은 한 존재를 어떻게 바꾸고, 또 어떻게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가. 괴물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가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처럼 보인다.
르네 지라르는 공동체가 자신의 불안과 폭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희생양의 구조를 이야기했다. 푸코는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며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개와 괴물의 시간』은 이 두 사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는 편을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상대를 낯선 존재로 밀어낸다. ‘괴물’은 어쩌면 실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오래된 언어가 아닐까.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닌, 이해하기를 포기한 순간 태어나는 하나의 시선.
괴물이 된 존재보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인간들을 바라보자. 누군가를 미궁에 가두고, 누군가를 침묵하게 만들며, 누군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세우는 동안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괴물’이라 불린 존재가 아니다. 타인을 하나의 얼굴이 아닌 기능과 대상, 위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인간의 마음이다. 악은 특별한 괴물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을 사유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우리와 유달리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어쩌면 평범하다고만 표현할 수 있을 사람들이며, 바로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폭력은 더욱 현실의 감각을 닮아 있다. 괴물은 탄생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다. 한 사람을 ‘너’로 부르는 일을 멈추면, 그 자리에 괴물이라는 이름이 들어선다.
인간은 언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가. 인간다움은 눈앞의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드러난다. 상대를 하나의 이름과 삶을 가진 존재로 마주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인간다움 역시 지켜낸다. 반대로 한 사람의 얼굴이 기능과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낙인은 너무도 손쉽게 탄생한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그 변화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무감각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놓치지 않는다. 타인을 괴물이라 부르는 순간, 가장 먼저 허물어지는 것은 상대의 인간성이 아닌 자신의 인간성이다.
이 소설집은 제목부터 ‘개’와 ‘괴물’이라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비를 품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과 인간에게 가장 먼 타자처럼 여겨지는 괴물. 개는 끝까지 ‘너’를 잃지 않는 존재이고, 괴물은 ‘너’를 ‘그것’으로 바꾸는 순간 탄생하는 이름이다. 관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오래된 약속이며, 그 약속이 끊어진 자리마다 괴물이라는 이름은 반복되어 왔다. 개와 괴물은 서로 정반대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결국 두 단어 모두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다. 결국 이 소설집이 응시하는 대상은 개도 괴물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다.
수천 년 전 신화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신들이 살아 있어서가 아니다. 그 신화 속 인간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권력은 여전히 타인을 구분하고, 공동체는 여전히 희생양을 만들며, 인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괴물이라 부른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이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개와 괴물의 시간』은 괴물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소설집이 아니다. 인간은 어떤 순간 타인을 괴물로 호명하고, 그 선택이 다시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바꾸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미궁은 신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마다 인간은 새로운 미궁을 만든다. 그 안에서 어떤 이는 괴물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어떤 이는 자신이 미궁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괴물은 늘 멀리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오래된 착각일지도 모른다. 『개와 괴물의 시간』은 그 믿음을 뒤집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서사와 철학적 소설을 즐기는 독자, 짧은 이야기 안에서 오래 사유할 문장을 발견하는 단편 애호가라면 특히 깊게 빠져들 것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듯하면서도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선과 악을 선명하게 가르기보다, 한 사람이 타인을 낙인찍고 밀어내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괴물을 따라 걷던 발걸음은 어느새 인간이라는 오래된 미궁 한가운데에 닿아 있다. 그 미궁을 지나고 나면, 사람을 함부로 괴물이라 부르던 입술도 조금은 더디게 움직이게 된다.
✏️도서출판 문학수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