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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알베르 카뮈 지음, 한수민 옮김 / 머묾 / 2026년 6월
평점 :
『이방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총성이 울린 해변이 아닌 법정이었다. 뫼르소는 사람을 죽였지만 법정은 그의 삶 전반을 심판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 다음 날 바다를 찾았다는 사실, 연인과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 차례로 호출된다. 살인의 경위보다 한 인간의 감정이 재판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 소설이 바라보는 대상도 분명해진다. 카뮈는 범죄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해부하고 있다.
뫼르소는 자신의 마음을 꾸미지 않는다. 사랑을 묻는 질문 앞에서는 모르겠다고 답하고, 결혼에도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슬픔보다 더위와 피로를 먼저 말한다.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자신의 감정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에게 반복되는 “상관없다.”, “모르겠다.”라는 말은 삶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 느끼지 않은 것을 느꼈다고 말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 한결같음은 오히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은 거짓말보다 솔직함에 더 쉽게 당황할 때가 있다.
검사는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날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더 오래 이야기한다. 법정이 확인하려 한 것은 범행의 동기보다 그의 감정이었던 듯하다. 장례식에서는 슬퍼해야 하고, 사랑한다면 확신해야 하며,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보여야 한다. 그 기대를 충족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대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법정은 죄를 심판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회가 허용하는 감정의 범위를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말과 행동을 통해 감정을 짐작할 뿐이다. 울음은 슬픔으로, 미소는 기쁨으로 읽힌다. 그렇게 감정은 내면의 상태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 문제는 그 짐작이 쉽게 확신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울지 않았으니 슬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망설였으니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상대의 내면은 확인할 수 없지만 사회는 그 빈자리를 해석으로 메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해석은 어느새 사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갖는다. 뫼르소가 받은 판결 역시 총을 쏜 행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사회가 익숙하게 읽어온 감정의 문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 낯섦은 살인만큼이나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지점에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흔히 부조리는 의미 없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방인』이 보여주는 부조리는 세계보다 인간에게 더 가까이 있다.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없는데도 서로를 이해했다고 믿고, 자신이 세운 감정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인간은 이해보다 판단에 더 익숙한 존재다. 타인의 마음은 끝내 확인하지 못하면서도 그 사람을 안다고 믿는 데에는 놀라울 만큼 주저함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했다고 확신하는 순간, 부조리는 이미 인간 사회 안에서 시작되고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 뫼르소는 모든 인간이 같은 죽음을 향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사형은 특별한 형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의 조건이 된다. 뫼르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을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재판은 살인의 재판인 동시에 감정의 재판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서로를 끊임없이 해석하고, 그 해석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직접 알 수 없다. 대신 표정과 말, 행동을 읽으며 빈자리를 메운다.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고 믿는 순간, 법정은 재판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로를 판단하는 순간마다 법정은 반복된다. 삶의 끝이 모두에게 같다면, 그 끝에 이르기 전 서로를 재단하는 수많은 기준은 얼마나 절대적일 수 있을까.
법정을 나왔다고 해서 재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카뮈는 그 법정을 인간 사이로 옮겨 놓는다. 살아가며 타인의 마음을 제 기준으로 판단해 본 적 있는 사람, 이해와 오해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오래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된 고전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현재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실존주의라는 이름이 어렵게 느껴졌던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철학을 그저 설명하기보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머묾의 감각적인 판형과 디자인은 이 오래된 고전을 읽는 경험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보탠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디자인까지 갖춘 덕분에,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소장하는 책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 그리고 그 믿음이 어떻게 한 사람을 심판하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읽는 동안보다,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확신하는 순간 더 자주 떠오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