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 - 대만에서 미국까지, 수관층 생태학자의 일곱 나무 이야기
란융샹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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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좋아한다는 말은 의외로 흔하다. 푸른 숲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고, 지친 날이면 누구나 한 번쯤 숲을 떠올린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콘크리트 숲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도 나무는 마음을 쉬게 하는 존재가 되어 준다. 흔들리는 잎사귀가 만드는 초록의 그림자,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잎들의 속삭임, 단단한 줄기를 따라 손끝으로 전해지는 생명의 감촉. 계절은 가장 먼저 나무를 통해 얼굴을 바꾸고, 인간은 그 아래에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그래서 나무를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특별하지 않다. 특별한 것은 그 사랑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느냐에 있다.

란융샹은 그 사랑을 가장 높은 곳까지 밀고 올라간 사람이다. 생화학을 공부하던 학생은 우연히 처음 나무에 오른 순간의 설렘을 잊지 못했고, 그 한 번의 감동은 20년에 걸친 수관층 연구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줄기와 그늘 아래가 아니라, 나무의 가장 높은 곳. 새와 이끼, 지의류와 미생물이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숲의 꼭대기로 향했다. 나무 한 그루는 더 이상 풍경이 아니었다.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생명 공동체였고, 하나의 우주였다.

나무를 오를 때 사용하는 로프의 재질과 편직 방식, 석궁과 대형 새총을 이용해 로프를 거는 방법, 나무 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구 과정은 낯설고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런 전문적인 설명 사이사이에서 자꾸만 시선이 머무는 것은 나무에 매달린 채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란융샹의 얼굴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만 피어나는 표정이 있다. 연구는 그녀의 직업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 무엇이든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사랑은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고, 오래 머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세계를 열어 보인다.

과학은 흔히 대상을 분석하고 분해하는 학문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란융샹의 연구는 정반대의 풍경을 보여 준다. 그녀는 나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했기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 오래된 시선 끝에서 생태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인데도 따뜻하다. 숫자와 그래프, 학술 용어가 등장하다가도 어느새 거대한 편백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숲의 풍경이 펼쳐지고, 한 사람의 설렘과 경이로움이 페이지마다 스며든다.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도 그 앞에서는 조금 무의미해진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은 달라도,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나무 없이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집과 가구를 만들고, 열매를 얻고, 그늘 아래에서 쉬며, 크리스마스에는 나무를 장식한다. 도시조차 ‘콘크리트 숲’이라는 이름으로 숲을 빌려 표현한다. 삶의 곳곳에 나무가 스며들어 있지만, 정작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올려다보는 시간은 드물다.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일수록 가장 쉽게 지나쳐 버리는 법이다. 란융샹은 그 익숙한 나무를 낯선 존재로 다시 소개한다. 땅에서 올려다보던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시선으로 숲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익숙했던 풍경은 조금씩 새로운 세계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나무의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마주친 나무의 수종을 모두 알아맞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대신 한 가지 변화는 분명히 찾아온다. 나무를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어린 시절 소풍만 가면 커다란 솔밭으로 향했다. 부슬비가 내리면 더 진해지는 솔향, 솔잎 끝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들, 빽빽한 소나무 군집 덕분에 얇은 솔잎임에도 공원 전체에 드리워진 그늘,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물줄기에 발을 담그던 여름의 정경, 돗자리 펴고 누워 올려다본 하늘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잘게 나뉘어 있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내려앉아 있던 솔잎 하나. 란융샹을 만나고 나서야 그 숲의 나무들도 저마다 하나의 생태계를 품고, 수십 년의 시간을 살아온 존재였음을 새삼 헤아리게 된다. 초록 그늘 아래에서 풍기는 알싸하면서도 포근한 향을 한 번 더 들이마시게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의 움직임을 이전보다 오래 따라가게 된다. 늘 곁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생명의 시간을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 나는 정말이지 나무를 사랑한다.

란융샹은 “모든 사람의 삶에는 자신과 세계의 낯선 구석을 연결해 줄 지극히 친밀한 존재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175쪽)라고 말한다. 란융샹에게 그 존재는 나무였다. 한 그루의 나무는 그녀를 숲으로 이끌었고, 숲은 다시 더 넓은 세계로 이어졌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하나의 존재를 오래 사랑하는 능력이다. 충분히 오래 바라본 대상은 더 이상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서 세계는 조금씩 깊어지고, 삶은 이전보다 넓어진다.

나무는 어제도 그 자리에 있었고,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잎을 틔우고, 그늘을 내어주고, 다시 잎을 떨구는 일을 묵묵히 반복한다. 달라진 것은 나무가 아니다. 그 곁을 지나던 한 사람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금 더 오래 올려다보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는 바로 그 시선을 선물하는 책이다. 생태학을 배우는 책이라기보다 나무를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그 사랑은 숲을 향해서만 머물지 않는다. 무심히 지나치던 일상에도, 오래 곁에 있었지만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존재들에게도 천천히 번져 나간다. 이제 길을 걷다 나무 한 그루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그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나무 꼭대기를 여행하다』는 바로 그 작은 변화를 선물하는 책이다.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사람,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을 다시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익숙했던 세계는 오래 바라보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오래 붙잡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 생태학을 어렵지 않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량융샹의 나무 여행은 더욱 반가울 것이다. 그녀는 나무를 연구하는 법보다 먼저 나무를 사랑하는 법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책은 숲을 이해시키기보다 숲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지식을 늘려 주기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도서출판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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