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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평점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인간이라는 종을 당연함의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뒤집어 보여주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전제들을 흔들어 놓는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한 고생물학자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그 죽음이 가리키는 방향은 범인을 찾는 일이 아니다.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가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베르베르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인류의 첫 조상을 찾기 위해 과거를 파고든다. 하지만 과거를 향해 걷는 그들의 발걸음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인간은 늘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정작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싶을 때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강물이 자신의 근원을 잊지 않듯, 인간 역시 자신이 흘러나온 곳을 이해할 때 비로소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다른 생명체들도 흔적을 남기지만, 자신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의미를 찾으려 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지나온 시간을 해석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는 것.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여정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학문적 탐구에 머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노력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진화의 정점이라 믿어 왔다. 자연을 해석하고, 문명을 건설하고, 우주를 탐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그 확신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수백만 년 전 평원 위를 떠돌던 원시 인류와 오늘날의 인간 사이에는 놀라울 만큼 많은 공통점이 남아 있다. 두려움을 피하고, 생존을 갈망하며, 자신보다 거대한 세계를 이해하려 애쓴다는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다. 인류는 세계를 이해할수록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설명하는 능력은 자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별함에 대한 확신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겸손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베르베르는 최초의 인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맹수의 위협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들에게 세상은 공포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해 왔다. 불을, 도구를,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의 위험만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까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삶, 더 안전한 내일, 더 넓은 가능성에 대한 상상. 생존만으로 하루를 채워야 하는 존재에게 사유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인간이 별과 신화, 미래와 희망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견딜 만큼의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힘의 역사보다 상상력의 역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태초를 향한 탐색인 동시에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류의 첫 조상을 찾는 여정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일이며, 더 나아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 된다. 과거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가 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먼 곳으로 향하기는 어렵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살인 사건과 음모, 추리와 반전 속에 철학적 통찰을 숨겨 놓는다. 인간이라는 종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 그리고 그 의심 끝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소설.
먼 곳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일수록 가끔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그런 시선을 과거의 가장 깊은 곳까지 데려가는 소설이다. 인간은 왜 인간이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 인류의 역사와 진화의 비밀에 매혹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잠시 내려놓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 추리 소설의 속도감 속에서 묵직한 철학적 사유를 함께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권한다. 태초를 향한 탐색은 결국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 되고, 인간의 기원을 좇던 발걸음은 어느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오래된 과거를 향한 여정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