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신의 불안과 싸우지 말 것 - 두려움을 다스리고 나를 알아차리는 불교 심리학 공부
페터 베르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6월
평점 :
많은 이들이 마음속 소란을 숨긴 채 살아간다. 페터 베르는 불안을 밀어내는 대신 바라보라고, 벗어나려 애쓰기보다 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 이 얼마나 낯설고 역설적인 제안인가.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 말이 지닌 깊이가 드러난다. 불안은 늘 문밖으로 내쫓아야 할 손님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 감정이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귀 기울이기보다 서둘러 침묵시키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공황장애 경험을 바탕으로 불안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관찰자의 시선보다 통과자의 체온이 배어 있다. 수많은 심리학 책들이 증상과 해결책을 설명하는 데 머무른다면, 이 책은 고통을 겪어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언어로 독자를 맞이한다. 저자가 불안을 개인의 결함이 아닌 신호로 바라보는 태도는 무척 흥미롭다. 불안은 지금의 생을 다시 살펴보게 만드는 안내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마음이 보내는 경고음을 끄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무엇이 그 소리를 만들어냈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삶은 때때로 가장 아픈 방식으로 우리를 깨운다. 애써 외면했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오래 미뤄둔 마음은 불안이라는 형태를 빌려 존재를 드러낸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고통을 피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슬픔은 잊으려 하고, 외로움은 바쁨으로 덮어 버리며, 두려움은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우회로가 허락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충분히 슬퍼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슬픔이 있고, 끝까지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힘을 잃는 두려움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불안을 피할수록 그것은 더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불안을 직면할 때 비로소 마음은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다. 어떤 감정들은 해결보다 통과를 요구한다. 괴로움은 존재의 예외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과 함께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조건이다. 비를 피할 수 없는 계절이 있듯 마음에도 피할 수 없는 날씨가 있다. 고통 자체보다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책 전반에는 심리학과 뇌과학, 진화심리학, 불교심리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힘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불교 심리학은 괴로움 자체보다 괴로움에 대한 집착과 저항을 주목한다. 저자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감정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때 마음은 조금씩 숨을 돌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감정은 좀처럼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사랑도 모두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밀어내려 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인데도 사람은 자꾸만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품어낼 수 있는 넉넉함이다. 그래서 마음의 평온은 무언가를 움켜쥐는 힘보다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힘에서 비롯된다.
살아가는 동안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도,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을 때도,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도 불안은 늘 곁에 머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불안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불안은 삶의 열기가 가장 짙어지는 자리에서 함께 태어난다. 『자신의 불안과 싸우지 말 것』은 마음을 단숨에 고쳐 주는 처방전이 아니다. 대신 오래 외면해 온 내면을 향해 문을 열어 보라고 손짓한다. 불안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두려움은 삶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 앞길을 비춰줄 것이다.
우리는 괴로움을 멈추게 하는 법을 배우지만, 괴로움과 함께 머무는 법은 좀처럼 배우지 못한다. 모든 괴로움이 해결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탁한 물이 저절로 가라앉기를 기다리듯, 어떤 감정은 밀어내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보다 마음을 몰아붙이는 법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괜찮아지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자신의 괴로움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또한 명상과 불교가 말하는 마음의 풍경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잘라내야 할 잡초처럼 여겨 왔다면 더욱 그렇다. 이 책은 불안을 몰아내는 기술보다 그 움직임을 바라보고,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보다 그 의미를 살펴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쉼 없이 자신을 고쳐야 한다고 믿어 온 사람이라면, 이 책이 내어주는 고요한 자리에 잠시 앉아 볼 만하다.
✏️도서출판 갈매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