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소년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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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은 상처는 무관심이 아닌 사랑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때로는 상대를 잃어버리는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을 숨긴 채 34일을 견딘 열네 살 소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충격적인 사건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시선은 사건의 진실보다 그 진실에 이르게 된 시간들에 머문다. 세상은 소년이 무엇을 했는지 묻지만, 소설은 그보다 먼저 무엇이 그를 그런 자리로 밀어 넣었는지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 아이의 비행도, 한 부모의 실패도 아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붙들고 버티던 두 사람의 고단한 생존기다.

사랑과 폭력은 이 작품 속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사랑이 두려움과 불안, 결핍을 만나면서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상대의 행복보다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그것은 돌봄이 아닌 관리가 되고 이해가 아닌 감시가 된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은 때때로 가장 교묘한 자기기만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본래 타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감정이지만, 불안에 사로잡힌 사랑은 상대를 통제함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그 순간 사랑은 소유의 형태를 띠게 된다. 타인을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착각 가운데 하나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감정이지만, 소유는 상대를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두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상대의 성공을 응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고 싶어 하고, 상대의 행복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자신의 불안을 덜어내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은 대개 애정이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진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악의를 품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소설의 인물들 역시 잔인해서가 아니라 연약해서 서로를 다치게 한다. 두려움에 휘둘리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며, 사랑을 어떻게 건네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의 불안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할 때 인간은 상대를 바꾸려 들고, 그 순간 사랑은 상처를 남기기 시작한다.

누군가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체념. 구조받지 못한 슬픔은 그렇게 침묵이 된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슬픔은 개인의 내부에서 천천히 형태를 바꾸며 자라난다. 그것은 침묵이 되고 거짓말이 되고 분노가 된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표현되지 못한 슬픔은 마음속 어딘가에 머물며 다른 방법을 찾는다. 때로는 체념이 되고, 분노가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적의가 된다. 인간은 잊음으로써 고통을 극복한다고 믿지만, 많은 감정은 사라지는 대신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마음은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지워버리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표류 소년』은 사랑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있었기에 더욱 비극적이었던 이야기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떠날 수 없고, 상처 입히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관계. 현실의 사랑은 종종 두려움과 욕망, 집착과 죄책감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무관심만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기대와 불안, 희생과 집착이 지나치게 쌓인 자리에서도 사랑은 쉽게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사랑은 언제나 다정하지만은 않다. 두려움과 욕망이 스며든 순간, 그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표류는 아무도 그것을 표류라고 알아보지 못할 때 시작된다.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같은 자리를 맴도는 동안, 인간은 생각보다 먼 곳까지 떠내려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이 왜 때로는 서로를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궁금했던 사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경쟁과 성취의 언어가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이 잠식할 수 있는지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표류 소년』은 바다 위를 떠도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다가 같은 물살에 휩쓸려버린 두 사람의 기록이다. 사랑은 언제나 구명보트가 되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해 던진 구조 신호가 파도에 뒤엉켜 상처가 되기도 한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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