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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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의 가치를 측정하려 한다. 얼마나 생산적인지, 얼마나 유용한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렇게 삶은 살아가는 일이 아닌 견뎌내는 일이 되고, 존재는 하나의 고유한 세계라기보다 기능과 역할의 목록으로 환원된다. 박민경의 『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 늙었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가 정한 정상성에서 비껴났다는 이유로.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불행의 표본처럼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은 쓸모가 아니라, 삶을 삶답게 느끼게 하는 감각이다.

평론에서 인용된 말처럼 현대 사회는 좋은 삶보다 생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무사히 하루를 통과하고, 뒤처지지 않고, 제 몫을 해내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살아 있다는 사실만 남고 살아가는 기쁨은 조금씩 마모된다. 『랠리』의 인물들은 바로 그런 상태를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버텨왔지만 어느 순간 살아가는 이유보다 살아남는 방법에 더 익숙해진 이들. 모두 살아 있지만 충분히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설 속 비극은 가난이나 질병, 상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자신이 하나의 인간이기 전에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더 많은 성취와 효율을 요구받을수록 인간은 풍요로워지기보다 점차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삶을 이루는 수많은 경험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고, 존재는 평가와 증명의 대상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하루는 채워지지만 삶은 비어가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박민경은 그 상실을 거창한 사건으로 회복시키지 않는다. 누군가 건네는 귤 하나, 오래 이어지는 전화 연결음, 우연히 나누게 된 대화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인물들을 다시 삶 쪽으로 이끈다. 특히 표제작 <랠리>에서 탁구공을 주고받는 행위는 이 소설집 전체를 설명하는 하나의 은유처럼 읽힌다. 공은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가 받아주어야 다시 건너갈 수 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홀로는 자기 존재를 온전히 지탱할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며 자기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삶을 지속시키는 힘은 의존과 교류 속에서 태어난다. 누군가의 안부를 기다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떠올리고, 함께 기억할 순간을 만드는 일. 그런 보잘것없는 왕복들이 하루를 견디게 하고 삶을 다음 장면으로 건네준다.

버려진 것과 순수함. 함께 존재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는 그 두 가지를 같은 자리에 놓은 소설집, 『랠리』.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존재들, 누구의 시선에서도 비켜난 것들 속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생의 빛이 있다. 그것은 낙관과도 조금 다르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삶 어딘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희미한 신뢰에 가깝다. 인간의 존엄은 유용함에서 비롯된 적이 없다. 쓸모를 잃었다고 해서 존재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연약하고 초라한 순간에도 쉽게 소멸하지 않는 어떤 것이 인간 안에 남아 있다. 이 소설집은 그 작고 완고한 생의 의지를 바라본다. 세상이 놓쳐버린 것들 속에서, 인간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빛을 향해 오래 시선을 머문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일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누구도 완전한 고립 속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성공이나 눈부신 승리가 아니다. 때때로 타인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이다. 『랠리』는 쓸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잊기 쉬운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기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 속에서 살아난다는 것. 그리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삶은 누군가와 주고받는 작은 랠리 속에서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살아가는 이유보다 살아남는 방법에 더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오래 버티는 법은 배웠지만 무엇을 위해 버티고 있는지 가끔 흐릿해지는 사람에게. 나이 들거나, 다르거나, 뒤처졌다는 이유로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기분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리고 인간이란 결국 혼자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는 사람에게 이 소설집을 권하고 싶다. 박민경의 인물들은 거창한 구원 대신 작은 왕복을 선택한다. 말 한마디, 안부 한 번, 선의의 시선 하나가 오가며 생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탁구공이 네트를 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랠리를 이어가듯이.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며 끝내 “닿았다 드디어”라고 적는다. 그 문장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 소설집 역시 우리에게 건네진 하나의 공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공은, 생각보다 멀리 날아와 있었다는 것을.

✏️도서출판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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