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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정판)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평점 :
절판
고양이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은 그보다 조금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인간은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름조차 없는 한 마리 고양이가 지식인들의 집을 드나들며 세상을 관찰하는 동안,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메이지 시대의 풍경만이 아니다. 허세와 자만, 인정받고 싶은 욕망,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확신. 시대와 국경을 건너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인간의 모습들이다. 신기한 것은 그 풍경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다. 고양이가 비웃는 대상은 소설 속 인물들이지만, 어느 순간 웃음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독자 자신을 향하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 믿는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부한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면 가장 우스운 순간들은 종종 그 믿음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누구보다 객관적이라고 생각할 때, 누구보다 타인을 잘 안다고 확신할 때, 누구보다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을 때 말이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끊임없이 철학과 예술, 학문을 논하지만 그들의 언어 아래에는 체면과 욕망, 허영심이 흐르고 있다. 고양이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보다 행동하는 방식을 더 유심히 들여다본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이 이해한 만큼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확신은 진실을 향한 의지인 동시에, 스스로 만든 울타리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의 풍자는 날카롭지만 공격적이지 않다. 비판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오래 바라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누군가의 위선이 보일 때도 그렇고, 쉽게 타인을 판단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도 그렇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면 그 모습들은 특별한 악의라기보다 인간 존재가 가진 오래된 습성처럼 느껴진다. 인정받고 싶고, 남보다 나아 보이고 싶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 주는 허영은 결국 누구에게나 조금씩 존재하는 그림자와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결점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은근히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상대를 분석하는 일보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고양이의 시선에는 냉소보다 연민이 먼저 담긴다. 인간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에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리석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존재들을 묵묵히 지켜본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놀랄 만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는 일이 쉬워졌고,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고양이의 태도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우스운 모습을 발견해도 곧바로 단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그를 용서하는 일과 닮아 있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 함께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란 상대를 완벽히 아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인간을 변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심판하지도 않는다.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장점만을 바라보는 일이 사랑은 아닐 것이다. 허영심 많고, 쉽게 흔들리고, 자주 실수하는 모습을 알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향한 가장 깊은 애정일지 모른다. 소세키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의 우스움을 보여 주지만, 그 웃음 속에는 따뜻한 체온이 배어 있다. 덕분에 독자는 자신을 비웃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 작은 머리통과 반짝이는 눈동자가 오래전부터 이미 인간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사람의 말보다 행동에 더 많은 진실이 숨어 있다고 믿는 사람, 타인의 모순에 불편함을 느끼다가도 문득 그 모습이 자신의 것과 닮아 있음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철학과 심리학이 다루어 온 오래된 주제들을 논문이나 이론서가 아닌 소설의 형식으로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반가운 작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저 작은 생명체가 매일 어떤 눈빛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쯤 상상하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등을 빌려 인간 사회를 산책하지만, 그 여정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혐오가 아닌 이해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을 연구하는 에세이이면서도, 인간을 품어 보는 연습에 가까운 소설로 읽힌다.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