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
정재영 지음 / 책들의정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가까이 들여다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상할 만큼 비슷한 곳으로 흘러간다. 마지막 순간 붙잡고 싶었던 것은 대부분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래 사랑했던 얼굴, 미처 건네지 못한 말,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어떤 저녁의 풍경. 생의 끝자락에서 인간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소박한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정재영 역시 그 지점을 반복해서 바라본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 혹은 죽음 가까이까지 다녀온 이들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인간은 평생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자주 혼동하며 살아간다는 것.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마지막 순간 마음속에 남는 것은 대부분 손으로 셀 수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책은 임사체험과 죽음의 감각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더 오래 머무르는 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떠올린 것은 사회적 지위도 성취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웃었던 순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기억, 표현하지 못한 마음들이 자꾸만 되돌아온다. 인간은 늘 ‘더 많은 삶’을 꿈꾸지만, 죽음 앞에서는 비로소 ‘무엇이 정말 삶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단순한 체념처럼 읽히지 않는다. 『무거운 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는 말은 언젠가 모두 놓고 떠나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욕망과 불안, 타인의 시선과 오래 붙들고 있었던 후회들. 삶을 짓누르던 많은 것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품고 갈 수 없는 짐이라는 듯이.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살아남는 장면들은 아주 평범하다. 함께 밥을 먹던 식탁, 익숙한 목소리, 오래된 냄새, 스쳐 지나가던 계절의 공기 같은 것들. 인간은 특별한 순간으로만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삶을 지탱하는 것은 대체로 이름 붙이기 어려운 평범함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는 동안, 우리는 이미 충분히 소중했던 시간들을 너무 쉽게 지나쳐왔다. 그래서 죽음은 삶을 파괴하는 사건이라기보다, 삶의 본심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이 끝까지 마음에 남았는지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은 마지막에 가서야 조용히 정리된다.

책 속 이야기들이 아주 새로운 통찰처럼 다가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여러 곳에서 들어본 이야기들이 반복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진실은 늘 비슷한 얼굴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더 표현할 것, 너무 늦기 전에 마음을 전할 것, 평범한 하루를 함부로 여기지 말 것.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자주 잊게 되는 문장들 말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외면하며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의미는 바로 그 유한함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끝이 존재하기에 오늘의 관계와 감정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단 한 번뿐인 시간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연구하는 기록이 아니라, 삶을 조금 가볍게 다시 바라보는 에세이에 가깝다. 마지막 순간 인간이 붙잡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지금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배우는 일이기도 하니까.

삶은 계속 무언가를 채워 넣는 과정이라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사실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덜어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끝까지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마지막에야 비로소 가장 소중했던 것을 알아보게 되는 존재. 죽음은 그래서 삶의 반대편에 놓인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오늘의 저녁과 누군가의 체온, 무심히 지나가던 풍경들이 애틋해진다. 인간은 자꾸만 영원할 것처럼 사랑을 미루고 마음을 아끼며 살아가지만, 죽음은 모든 시간이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통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함을 증명한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까. 그리고 그 장면 속에는 누구의 얼굴이 남아 있을까.

우리는 대개 삶을 앞으로만 나아가는 운동처럼 이해하지만, 죽음 가까이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향해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무거운 것은 두고 가기로 했다』는 임사체험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를 통해, 인간 존재의 우선순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되짚는 책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사랑한다는 말을 자꾸 미뤄두었던 사람, 너무 바쁘게 살아오느라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잊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어가게 해준다.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삶 속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정과 기억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죽음을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 속에서 인간 존재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천천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기억과 감각의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 순간 인간에게 남는 것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가 아니라, 누구를 사랑했고 어떤 시간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도서출판 책들의정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