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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 - 지난 200년 법과학 발전의 놀라운 이야기
발 맥더미드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완전범죄라는 말에는 어딘가 인간적인 오만이 스며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폭력과 거짓을 완벽히 지워낼 수 있다고 믿고,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은 그 믿음을 파괴한다. 인간은 침묵할 수 있어도, 몸과 사물은 침묵하지 못한다. 손끝에서 떨어진 미세한 섬유, 신발 바닥에 묻은 먼지, 소금보다 작은 DNA 조각, 삭제되었다고 믿었던 디지털 기록까지.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세계에 자신을 흘리고 지나간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는 듯이. 인간은 자기 삶을 은폐하며 살아갈 수는 있어도, 세계와 단 한 번도 접촉하지 않은 채 존재할수는 없는 법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법과학을 단순한 수사 기법의 역사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발 맥더미드는 과학 수사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들여다본다. 오래전의 부검 기록에서부터 현대의 디지털 포렌식까지 이어지는 과정 속에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 문명의 집념이 서려 있다. 누군가는 죽은 몸에서 마지막 시간을 읽어내고, 누군가는 구더기의 성장 속도에서 방치된 계절을 계산하며, 또 누군가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혈흔 속에서 이름 하나를 복원해낸다. 그 모습들은 차갑고 이성적인 과학자의 얼굴이라기보다, 망각 속으로 가라앉는 목소리를 어떻게 해서든 끄집어 내려는 사람들에 가까워 보였다.
죽은 자는 어떻게 다시 말하게 되는가. 법과학은 어쩌면 침묵을 번역하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이미 숨이 멎은 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만, 체온의 변화와 혈흔의 방향, 뼈의 손상과 피부 아래 남겨진 흔적들은 마지막 순간을 복원해낸다. 인간의 육체는 죽음 이후에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부검실과 범죄 현장은 더 이상 공포의 공간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는 억울하게 끊어진 삶들이 남긴 최후의 증언과, 그것을 들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존재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된 죽음을 끝까지 잊지 않으려는 자들.
동시에 이 책은 과학을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도 않는다. 법과학은 분명 경이롭지만, 그것 역시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인 이상 완전할 수는 없다. 잘못된 감식 하나가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편견 어린 수사가 진실을 더 오래 어둠 속에 묻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다. 과학은 신의 시선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의 거짓과 침묵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 발전시켜온 처절한 노력에 가깝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사가 아니라, 진실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오랜 실패와 집념의 역사이다. 진실은 종종 너무 늦게 도착하지만, 그 늦음조차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법과학도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흔적을 남기며 세계를 통과하는 일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속일 수 있고, 기억을 왜곡할 수도 있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영원히 감춰버렸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는 생각보다 집요하게 인간을 기억한다.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한 올, 아주 짧은 클릭 기록까지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증언하게 된다. 완벽히 사라지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세계 어딘가에 자신을 남기고 마는 우리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삶을 지워내려 하지만, 세계는 그 지워진 자리마저 흔적으로 보존해낸다. 『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은 바로 그 잔혹할 만큼 집요한 기억의 구조를 보여주는 책이다. 진실은 때로 인간보다 오래 살아남고, 법과학은 그 오래된 침묵 속에서 인간의 시간을 다시 복원해낸다.
어린 시절 <CSI 시리즈> 속 수사관들이 현장에 남겨진 아주 작은 먼지와 혈흔으로 거짓을 뒤집는 장면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이라면, 혹은 지금도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 속에서 끝내 밝혀지고야 마는 진실의 순간에 오래 시선을 빼앗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내는 과학수사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은 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그리고 지워졌다고 믿었던 진실이 어떻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기록에 가깝다. 죽은 몸, 먼지, 구더기, 디지털 데이터 같은 것들이 더 이상 혐오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을 증언하는 언어처럼 느껴지는 순간, 독자는 법과학이라는 학문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망각과 은폐에 맞서려는 인간 문명의 처절한 집념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도서출판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