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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을 먹어라
세라 마리아 그리핀 지음, 아밀(김지현) 옮김 / 허블 / 2026년 5월
평점 :
사랑은 흔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연결보다 소유에 가까운 사랑도 존재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의 내부로 끌어당겨 완전히 같은 온도로 만들고 싶어 하는 충동. 세라 마리아 그리핀의 『네 사랑을 먹어라』는 바로 그 가장 위험하고 축축한 욕망을 식욕이라는 형태로 꺼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과 누군가를 삼켜버리고 싶다는 충동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는가. 읽는 동안 반복해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정말 사랑 이야기인지, 아니면 외로움이 만들어낸 포식의 기록인지 분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타인과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상대를 자기 안에 영원히 붙들어두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애정은 다정함의 얼굴로 다가오다가도 어느 순간 숨을 조여오는 집착으로 변한다. 사랑은 흔히 따뜻한 감정으로 포장되지만, 그 밑바닥에는 누군가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되고 싶다는 욕망 또한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 존재를 통해 비어 있는 자기 내부를 메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떤 애정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결핍을 덧씌운 형태를 더 오래 사랑한다. 서로를 갈망한다는 말 속에는 이미 상대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스며 있다. 누군가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가장 완전한 소유를 의미하니까.
가장 외로운 순간의 인간은 무엇이 자신을 해치고 있는지보다, 무엇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에 더 쉽게 매혹된다. 사랑은 때때로 행복보다도 소속감의 형태로 찾아오며, 버려진 사람들은 그 온기를 의심할 힘조차 잃어버린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인간이 반드시 행복해서 관계를 붙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상처와 불안, 침묵과 결핍 속에서도 사람은 자신을 바라봐주는 시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형태를 확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자신을 잠식하는 애정조차 다정함으로 오해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필요해진다는 감각은 때때로 존엄보다 강력한 유혹이 된다.
이 작품 속 식욕은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애정의 가장 원초적인 얼굴처럼 보인다. 더 가까워지고 싶고, 더 많이 원하고 싶고, 상대가 자신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충동을 사회적인 언어와 윤리 속에 감춘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억눌린 욕망을 축축한 육체와 기괴한 식욕의 형태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피와 살점의 공포보다 관계의 감정선이 훨씬 더 음습하다. 인간은 사랑 속에서 서로를 보듬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갉아먹기도 한다. 사랑은 가장 다정한 얼굴로 타인의 내부에 침투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관계들은 상처보다도 서서히 스며드는 방식으로 사람을 무너뜨린다. 애정과 소유욕, 다정함과 집착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아일랜드 문학 특유의 서늘함은 늘 이런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조차 인간은 타인을 갈망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갈망이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보다 더 깊은 어둠으로 이끈다는 사실 말이다. 『네 사랑을 먹어라』는 기괴한 호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싶었던 사람들, 자신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타인을 끌어안으려 했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이 소설은 무섭다기보다 슬프다. 사랑은 분명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상대를 품으려 하기보다, 차라리 자신의 내부에 가두고 영원히 잃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가장 외로운 사람들은 때때로 그 어둡고 위험한 사랑조차 구원처럼 받아들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이 왜 때때로 삼키고 삼켜지는 감각으로 변하는지 오래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특히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지, 애정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자주 자기 파괴를 허락하는지 탐닉하듯 읽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샐리 루니와 클레어 키건 이후의 아일랜드 문학이 계속해서 증명해온 것은, 인간의 외로움이 반드시 조용한 방식으로만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네 사랑을 먹어라』 역시 그 계보 위에서 사랑과 결핍, 소속에 대한 갈망을 축축하고도 기괴한 형태로 밀어붙인다. 다정함과 포식 본능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인간의 애정이 때때로 윤리보다 더 깊은 곳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체온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허블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