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
매트 존슨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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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존슨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낯선 행성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오래된 침묵이다. 돔 도시 ‘뉴로어노크’는 미래 문명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지구의 탐욕과 계급, 차별과 권력이 조금도 변형되지 않은 채 복제되어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배제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진실을 외면한다. 이 소설은 외계의 괴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주 끝에 도착하고서도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음산한 공포로 남는다. 시대와 공간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다시 권력을 만들고, 침묵 속에서 안정을 거래한다. 인간 사회는 낯선 세계를 개척해온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오래된 질서를 다른 장소에 이식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규칙이 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되었다는 고백에 가깝다. 인간은 진실을 몰라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한다. 그리고 어떤 사회는 정의보다 그런 침묵 위에서 훨씬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흥미로운 점은 그 침묵이 점차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굳어진다는 데 있다. 반복적으로 외면된 진실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 바로 그 공백이 공동체의 질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침묵을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히 유지된다. 어떤 침묵은 총칼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런 침묵은 눈에 잘 띄지 않기에 더욱 견고하고, 오래 지속되기에 더욱 위험하다.

인간은 언제나 불편한 진실보다 견딜 수 있는 거짓을 사랑해왔다. 진실을 직면하는 순간 지금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입을 다문 채 익숙한 하루를 반복한다. 자유보다 안락을, 질문보다 질서를 선택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억압에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적당한 안전과 익숙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견고한 감옥은 종종 스스로 납득해버린 세계 안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통제라는 것이 반드시 공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안정된 일상을 얻는 대신, 점차 자기 안의 의심을 포기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삶은 언젠가 스스로를 보호하기보다 체제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인간은 억압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질서를 유지하는 공범이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공포를 무겁고 비극적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블랙코미디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통해 인간 사회의 우스꽝스러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스운데 웃을 수만은 없는 기분. 그 웃음에는 이상하리만큼 현실적인 질감이 묻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부조리를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불합리하다고 말하면서도 익숙해지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순응한다. 그런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서늘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블랙코미디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확대경처럼 기능한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마다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 웃음을 자아내는 대상이 결국 우리 자신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보지 않기로 결심하며 살아가는가. 어떤 사회는 진실을 외면하는 대가로 유지된다.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모른 척하며, 누군가는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을 불온한 존재로 취급한다. 그렇게 오래 지속된 침묵은 마침내 질서가 되고 문화가 되며, 결국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들이 아니다. 진짜 공포는 이미 모두가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평온을 잃지 않기 위해 침묵하기로 합의해버린 인간들에게 있다. 지금 살아가는 세계에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 지금 누리고 있는 평온 역시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침묵은 언제나 비겁함의 형태로만 남지 않는다. 때로는 성숙함과 현실 감각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 속에 스며든다. 그래서 더 쉽게 의심받지 않고, 더 오래 지속된다.

진실보다 안락한 침묵이 더 오래 살아남는 사회를 낯설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조지 오웰식 디스토피아와 커트 보니것 특유의 블랙코미디를 사랑하는 SF 독자, 인간은 왜 스스로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지 그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이 책은 단순히 기괴한 우주 도시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끝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조용히 묻어두었던 감각들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이야기이다. 익숙한 세계를 의심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왜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침묵은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침묵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트 존슨은 웃음과 불안을 뒤섞은 방식으로 독자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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