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든 두려움
알렉스 핀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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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쉽게 하나의 이야기를 믿어버리는가. 사람들은 언제나 복잡한 진실보다 이해하기 쉬운 악인을 원한다. 누군가는 범인이어야 하고, 분노는 향할 곳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한 사람의 인생 위에 ‘살인자’라는 단어를 덧씌운다. 그 순간부터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미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섬뜩해진다. 진실은 조작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 전체가 스스로 조작된 진실을 원하기도 하니까. 인간은 진실보다 자신의 불안을 가장 손쉽게 설명해주는 서사를 선택한다. 이해할 수 없는 혼란 앞에서 끝내 하나의 얼굴을 골라 죄를 덧씌우고, 그렇게 탄생한 희생양 위에서 공동체는 안도한다. 마치 악이 특정한 개인 안에만 존재한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의 불안을 봉합하듯이.

작품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것은 현실 속 수많은 누명 사건들이었다. 민주화 운동 시절의 조작 사건들, 그리고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러 오판 사건들까지. 누명은 단순히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이름과 시간, 존재 전체가 타인의 서사 속으로 강제로 편입되는 일에 가깝다. 인간은 극한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된다. 끝없이 몰아붙여지는 질문과 압박 앞에서, 사람은 진실보다 이 고통이 끝나기를 먼저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의 삶은 너무 쉽게 사건의 일부로 축소된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렇게 만들어진 낙인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령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잃어버린 젊음과 명예, 가족과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떤 보상도 한 인간이 감옥 속에서 흘려보낸 세월을 완전히 돌려주지는 못한다.

이 작품이 더욱 음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비극이 거대한 악마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발적인 충동, 순간의 공포,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다는 비겁한 욕망이 차례로 얽히며 비극은 점점 거대한 거짓으로 자라난다.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한 괴물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조금씩 침묵했고 외면했다. 그리고 바로 그 침묵들은 한 사람, 한 가족의 인생 전체를 집어삼킨다. 폭력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폭력은 침묵의 얼굴을 하고 있고, 어떤 폭력은 방관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많은 비극은 적극적인 악의보다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진실을 외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반복된 외면은 하나의 질서가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공포는 살인 그 자체보다도, 인간이 자기 안위를 위해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실을 외면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있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진실의 저장소처럼 여기지만, 사실 기억은 감정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되는 감각이다. 인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두려웠던 방식으로 기억한다. 공포 속에서 바라본 장면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확신이 되고, 불완전한 인상은 어느새 절대적인 믿음처럼 굳어진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방향으로 본 것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에 가깝고, 확신은 그저 감정이 오래 응고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결국 인간은 진실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방향으로 세계를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자기 내부의 불안을 세계 위에 투사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모든 두려움』은 빠르게 읽히는 스릴러이면서도, 동시에 인간 사회가 어떻게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응시하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왜 진실보다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더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파괴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의 공범으로 남게 되는가. 진실은 때때로 너무 늦게 도착한다. 무너진 삶과 사라진 시간, 이미 돌이킬 수 없어진 관계들은 결백만으로 복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진실을 향해 걸어간다. 거짓 위에서는 결국 자기 자신조차 온전히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알렉스 핀레이가 우리에게 남기는 공포는 살인도 거짓도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진실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선택해왔다는 사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늦게 발견하게 되는 마지막 두려움이다.

진실보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더 빨리 소비되는 세계에 지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꽤 깊은 곳까지 파고들 것이다.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이 얼마나 손쉽게 공동체의 안도가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간단히 ‘사건’으로 축소될 수 있는지를 지켜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또한 인간의 기억과 확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감각 위에 세워져 있는지 탐닉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모든 두려움』은 단순히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왜 끝내 진실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선택하는 존재인지, 그 불편한 질문을 가장 속도감 있는 방식으로 해부해낸다. 빠르게 읽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서늘해진다. 마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쉽게 하나의 이야기를 믿어왔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이것이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전율로 남는다. 알렉스 핀레이라는 이름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이 책의 독자라면 기꺼이 다음 세계 앞에서 기다리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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