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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4월
평점 :
처음 이 작품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오래된 화약 냄새 같은 것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잔향. 사회 곳곳에 눌어붙은 부패와 은폐, 그리고 끝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진실들의 냄새. 『파이로매니악』 속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사람들은 그 연기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PM의 폭발은 단순한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불길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하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마침내 균열을 뚫고 밖으로 새어나온 순간에 가깝다. 진실은 반복해서 수정되고, 거대한 조직은 언제나 자신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인간의 삶은 너무 쉽게 통계와 보고서 뒤편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설명되지 못한 상처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 사람은 결국 법보다 감정을 먼저 신뢰하게 된다.
PM이 마주한 세계는 정의보다 은폐에 익숙했고, 진실보다 조작에 능숙했다. 사건의 진상은 권력 아래 묻혀버리고, 인간의 죽음조차 더 거대한 조직을 지키기 위한 재료처럼 소비된다. 그렇게 반복해서 진실이 삭제되는 순간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독자 역시 위험한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만약 시스템이 끝내 정의를 외면한다면, 인간은 결국 무엇으로 옳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어쩌면 인간은 정의 자체를 갈망한다기보다, 자신의 고통이 최소한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고통을 증명해주지 않는 세계에서 감정은 점차 신념으로 변하고, 신념은 끝내 폭력과 손을 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파이로매니악』 1권은 결국 ‘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불은 추위를 몰아내고 어둠을 밝히는 가장 오래된 빛이지만, 동시에 인간과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재앙이기도 하다. PM의 분노 역시 그렇다. 처음의 불꽃은 부패를 태우기 위해 시작된다.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고, 법이 처벌하지 못한 악을 심판하기 위해 타오른다. 하지만 불은 언제나 경계를 모른다.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화염은 결국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번져간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 불길이 점점 정당해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가장 위험해진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침묵당한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꺼내 든 언어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하는 전조에 가깝다.
PM의 테러는 분명 끔찍한 행위이지만, 독자는 자꾸만 그들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된다. 처벌받지 않는 권력자들, 조용히 묻혀버린 희생자들, 그리고 진실 위에 덧칠되는 거짓들 앞에서 ‘저 인간들은 정말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저자는 독자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폭력이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폭력마저 정당하게 느껴지도록 사람을 몰아붙이는 사회가 더 위험한 것인가. 결국 무서운 것은 폭탄 자체가 아닌, 인간이 폭력을 정의라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독자를 안전한 관찰자의 위치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음속 윤리의 경계는 조금씩 흔들린다. 인간은 언제나 폭력을 혐오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이 사랑하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폭력조차 용서하고 싶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직 1권에 불과하지만, 이미 PM의 불길은 단순한 복수극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시대가 오랫동안 숨겨온 균열과 냉소, 침묵의 부산물처럼 느껴진다. 묘한 잿빛 감각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남는다.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법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분노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분노는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화염으로 끝나게 되는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무려 25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완결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래전 인터넷 소설로 시작된 이야기가 지금의 시대와 맞물리며 다시 살아났다는 점은 묘한 감각을 남긴다. 『퇴마록』으로 한 시대의 상상력을 뒤흔들었던 이우혁은 이번 작품에서도 단순한 장르적 쾌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시 한번 인간과 사회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춰낸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이 불길이, 앞으로 어디까지 번져가게 될지를.
『파이로매니악 1』은 정의가 끝내 승리하리라는 믿음보다, 정의가 무너진 자리에서 인간이 어떤 얼굴로 변해가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또한 방산 기술과 폭발물, 드론과 해킹, 감시 체계 같은 첨단 기술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만큼, 묵직한 서사와 함께 밀도 높은 테크노 스릴러의 감각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추천한다. 이 작품 속 기술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권력, 폭력성을 더욱 정교하게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기능한다. 무엇보다 『파이로매니악』은 ‘분노’라는 감정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도 설명되지 못한 냉소와 분노가 남아 있다고 느껴본 사람이라면, PM의 불길 속에서 묘한 공명과 불편함을 동시에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래전 이우혁이라는 이름 아래 밤을 지새웠던 독자라면, 25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돌아온 그의 세계가 여전히 인간과 사회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깊게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도서 및 원고료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