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고백 ㅣ 그늘 중편선 4
김태령 지음 / 그늘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은 언제나 진실을 향해 있을까. 오래도록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다. 말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지고, 그 과정에서 진실은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그러나 『허위고백』에서 마주한 목소리는 그 익숙한 믿음을 비껴간다. 감정이 제거된 문장은 지나치게 정교하고, 흔들림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말은 분명 입을 통과해 나오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끝내 짐작하기 어렵다. 이 낯선 감각 앞에서 고백은 더 이상 내면의 증언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호출되는 하나의 산출물처럼 느껴진다. 언어는 고백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그를 통과하는 경로에 가까워진다. 말해진다는 사실과 말하고 있다는 감각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틈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이 작품은 고백이라는 행위의 방향 자체를 다시 묻는다.

이 지점에서 행위의 주체는 흐릿해진다. 명령과 실행이 맞물려 돌아갈 때,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귀속시켜야 하는가. 선택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개인의 의지를 전제해왔지만,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순간 판단의 기준은 쉽게 무너진다. 보이지 않는 규칙, 설계된 조건, 외부에서 주어진 방향들. 그것들이 촘촘히 얽혀 있을 때 행위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체계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내 ‘누군가’를 찾아내려 한다. 그 무게를 떠안을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윤리는 작동할 자리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임은 언제나 인격을 요구해왔고, 그 인격이 흐려지는 순간 우리는 판단의 근거를 상실한 채 맴돌게 된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대개 기억을 통해 자신을 이어 붙인다. 과거를 떠올리고, 그 위에 현재를 겹쳐 놓으며 동일한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기억이 끊어지는 순간, 그 연속성은 미묘하게 어긋난다. 과거를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과거의 행위를 되돌려주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여기서 ‘나’라는 개념은 단순한 신체의 문제에서 시간 속에서 유지되는 인식의 문제로 확장된다. 기억은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럼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설명되지 않는 잔존, 이름 붙일 수 없는 흔적. 그것은 기록되지 않았음에도 지워지지 않고, 의식되지 않았음에도 책임의 마지막 형태처럼 어딘가에 머문다. 어쩌면 책임은 기억 속에 저장되는 정보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죄는 언제나 느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죄책감, 후회, 고통 같은 감정들이 그 존재를 증명해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 연결이 느슨해진다. 감정이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어떤 흔들림은 계속된다. 그것은 정서라기보다 반응에 가깝고, 후회라기보다 잔향에 가깝다. 그렇다면 죄는 감정을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감정과 무관하게, 이미 발생한 행위 위에 독립적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감정이 결여된 자리에서도 어떤 책임이 유지될 수 있다면, 윤리는 더 이상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상태로, 보다 냉정한 형태로 남게 된다. 그 순간 죄는 느껴지는 것이 아닌, 단지 ‘남아 있는 것’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다.

아프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것도 확정짓지 않은 채 멈춰 서 있다. 어떤 것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고, 판단은 유보된 상태로 남겨진다. 그러나 그 멈춤은 공백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유를 요구하는 자리가 된다. 고백은 더 이상 투명한 진실의 통로로 읽히지 않고, 선택은 순수한 의지의 산물로 믿기 어렵다. 기억과 감정, 명령과 실행이 뒤섞인 자리에서 남는 것은 단 하나, 끝내 분리되지 않는 책임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끝까지 결정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 자리에 함께 머물게 된다. 그 머뭇거림 속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확신해왔던 것들의 윤곽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한다. 잊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책임은 언제나 남아 있는 쪽에 머문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조차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고백은 본래 응답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고백은 도착할 자리를 상실한 채 공중에 머문다. ‘빈 자리에 하는 고백’이라는 정의처럼, 그것은 듣는 이를 상정하지 않은 채 발화되고, 이해되기 이전에 이미 어딘가 어긋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타인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에 가깝다. 선택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실은 주어진 경로 위의 움직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느껴본 적 있는 사람,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무언가를 떠올려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는 오래 남을 것이다. 감정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도 윤리가 성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고백이 끝내 무엇을 남기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은 그 공백 속으로 조용히 당신을 데려간다.

✏️도서출판 그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