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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채집자
김철우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3월
평점 :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꿔,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손으로 쥘 수 없던 것이 반지 속에서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순간. 그 빛은 어쩐지 위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감정이 형태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름 붙여진 감정은 사라지기보다 더 단단해진다. 붙잡을 수 있게 되었을 뿐, 놓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물채집자』가 호출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다. 무너진 다리와 건물, 가라앉은 배, 그리고 밀려드는 군중 속에서 스러져간 이름들. 그날의 슬픔은 한순간에 폭발했지만, 이후의 시간 속에서 그것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반복되는 애도와 추모,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드는 피로와 망각. 우리는 기억하려 애쓰면서도, 동시에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모순 위에 서 있다. 기억은 언제나 현재를 잠식하고, 망각은 언제나 과거를 훼손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찾으려 애쓴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지고, 너무 멀어지면 무감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슬픔은 끝내 해소되지 못한 채, 사회의 더 깊은 층으로 침전된다. 그것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점차 공기처럼 퍼져 나가지만, 아무도 그것을 온전히 들이마시려 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애도가 끝나는 과정이 아니라, 상실과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지속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 ‘채집’이라는 행위는 무엇일까. 끝내기 위한 시도일까, 아니면 더 정교한 방식으로 붙잡아두는 일일까. 채집된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남아,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치유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존에 더 가깝다. 다만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더 깊은 층위에서. 감정은 흘러야만 소멸할 수 있지만, 저장되는 순간 흐름을 잃는다. 흐르지 못하는 감정은 부패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고인다. 그렇게 고여버린 슬픔은 어느 순간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구조의 일부가 된다. 더 이상 누구의 것이라 부를 수 없는 감정. 그러나 분명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고통. 그 모호한 상태 속에서 애도는 끝나지 못하고, 형태만 바꾼 채 계속해서 이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애도를 마무리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모습으로 연장하는 법만을 배워온 것은 아닐까.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듣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든 소비로 기울 수 있다. 공감은 언제나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감정을 안전한 거리에서 다루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고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이해했다’는 말로 정리해버린다. 이해는 때로 감정을 끝내는 가장 간결한 방식이 된다. 더 이상 그 고통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면죄부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스쳐 지나가고, 그것이 우리를 통과하지 않은 채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공감은 더 이상 관계가 아닌 태도가 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타인의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완결된 이해로 착각하게 만든다.
사라지지 않고 저장되는 눈물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 우리는 과연 슬픔을 덜어내고 있는가, 아니면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있는가. 애도는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조차,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빛나는 반지 속에서 슬픔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멀리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그것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누구의 내부에 고여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슬픔을 서둘러 끝내려 하지 말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보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했다는 말로 쉽게 덮어버리기보다, 그것이 끝내 닿을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보라.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기억 앞에서, 스스로의 거리감을 외면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그런 망설임과 주저함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 건네진다. 그리고 아직도 그 날의 시간 위에 서 있는 사람들, 말로 다 닿지 않는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떤 슬픔은 설명되지 않고, 어떤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억지로 괜찮아지려 하지 말고,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믿어보라. 이 책은 위로를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어 줄 것이다. 당신이 아직 놓지 못한 것들과 함께.
✏️도서출판 책과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