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38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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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와 폐허로 채워진 세계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 이를테면 가족이라는 이름이나 누군가를 향한 발걸음은 오히려 낯설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면,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가.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는 대답 대신 인물들을 길 위에 세운다. 그 길은 선택과 포기의 경계 위에 놓인 외줄처럼 위태롭다.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추락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인간은 왜 굳이 앞으로 나아가는 쪽을 택하는가. 멈추는 편이 더 합리적인 순간에도 왜 발걸음은 자꾸만 앞을 향하는가.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집착에 가깝다. 누군가는 수혈을 위해, 누군가는 출산을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안전은 뒤로 밀려나고 목적만이 앞으로 돌출된다. 여기서 사랑은 흔히 말하는 따뜻한 감정보다는 선택을 왜곡시키는 힘처럼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 할 순간에도 인간은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간다. 이 기묘한 역행을 단순히 숭고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혹은 그저 버리지 못하는 어떤 고집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서 굳어진 방향을 끝내 꺾지 못한 채 그 궤적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선택된 이유는 쉽게 폐기되지 않고, 끝내 사람을 끌고 간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사랑은 끝내 미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던지는 행위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선택지를 지워버리는 편협한 감정이다. 세계가 붕괴된 상황에서조차 인간은 더 효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을 향해 걸어간다. 이때 사랑은 삶을 지탱하는 이유이면서도,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왜 인간은 그 선택을 멈추지 못하는가에 있다. 인간은 결코 이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붙들려 때로는 생존보다 무거운 것을 짊어진다. 그 의미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때로는 파국을 부른다. 그럼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다. 이유를 잃는 순간 삶 자체가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끝까지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희망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공허가 남아 있다.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다. 도착 이후를 상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다. 마치 이미 정해진 방향처럼,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충동처럼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낙관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지속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태도에 더 닿아 있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은 탈출이라기보다 반복에 가깝고, 선택이라기보다 받아들임처럼 보인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끝없이 몸을 흔드는 서커스의 동작처럼,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움직임. 그 무대는 환한 조명이 아닌, 재난으로 어두워진 도시 한가운데에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비극적인 현실 위에서조차 멈추지 않는 인간의 곡예를 가리키는 이름처럼 읽힌다.

우리는 왜 사랑을 위해 끝까지 나아가는가. 그리고 그 사랑은 정말 지켜야 할 것인가. 세계가 끝난 자리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 그것이 삶을 가능케 하는 마지막 이유인지, 아니면 끝내 놓지 못하는 오래된 습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채로.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 모든 질서가 사라진 순간에도, 인간은 가장 비합리적인 것을 끝까지 붙든다는 것. 그 선택은 때로 자신을 소모시키고, 끝내 아무것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쩌면 그 집요함 자체가 인간을 인간으로 남겨두는 마지막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끝내 붙들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삶은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리지 못한 것 하나 때문에 계속 걸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사랑이 반드시 구원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삶을 무너뜨릴 위험을 품고 있더라도, 인간은 끝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 이야기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대신 질문한다. 그럼에도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갈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끝내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사람에게 이 책은 오래 남을 것이다. 무너진 세계의 풍경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떠오르고, 그 위를 지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다른 형태로 재현되더라도 그 질문을 형태만 달리한 채 끝내 사라지지 않게 할 것이다.

✏️도서출판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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