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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ㅣ 새소설 23
강지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4월
평점 :
삶은 종종 하나의 방향을 요구한다. 어디에 머물 것인지, 무엇을 붙잡을 것인지, 어떤 의미를 끝내 완성해낼 것인지. 그러나 어떤 존재들은 그 질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밀어낸다. 스스로를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으려는 선택, 혹은 고정될 수 없음을 이미 알아버린 태도. 정착하지 않음은 결핍으로 읽히기 쉽지만, 이 작품이 그려내는 움직임은 오히려 그 반대편을 향한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빠르게 미끄러지는 세계 속에서, 끝내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것은 체념이라기보다,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어떤 결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를 내려놓은 채 살아가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인디카>는 분명한 사건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하루들이 느슨하게 이어지고, 그 사이를 미세한 감각들이 채운다. 걷고, 멈추고, 떠나고, 다시 도착하는 일상의 반복. 그 흐름은 어떤 목적을 향한 직선이 아니라, 일정한 박자를 가진 리듬에 가깝다. 삶은 하나의 안정된 선율이 아닌 끝내 맞춰지지 않는 리듬이니, 그 어긋남을 견디는 방식으로만 지속될 수 있는 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의미를 향해 나아가기보다, 그저 리듬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삶. 그것은 공허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지속된다. 마치 이유를 묻지 않아야만 계속될 수 있는 호흡처럼. 목적 없이 이어지는 움직임 속에서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가 기대어온 의미의 구조를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이 리듬은 언제나 바깥이 아닌, 몸 안에서 먼저 시작된다. 생각으로 정리되기 이전에 이미 감각으로 스며드는 것들. 탭슈즈가 바닥을 두드릴 때 울리는 미세한 떨림, 끊기고 어긋나는 호흡,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린 균형. 이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히 또렷하다. 시간은 균등하게 나뉘는 단위가 아니라, 몸을 통과하며 길어지고 뒤틀리는 감각에 가깝다. 끊어진 듯 이어지는 호흡 속에서, 하루는 길이로 측정되지 않고 밀도로 축적된다. 그 밀도는 의미로 환원되기 이전의 삶, 해석되기 전의 생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언어보다 앞서 존재하는 어떤 차원. 인간은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감각을 통과시키는 존재이다. 사유는 언제나 한 발 늦고, 몸은 이미 그 다음 박자를 밟고 있다.
붙잡는다는 것은 어쩌면 형태를 만들려는 욕망에 가깝다. 관계를 고정하고, 시간을 묶어두고, 스스로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시키려는 시도. 그러나 흘려보내는 쪽에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 있다.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경험을 통과시키는 일,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채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 태일은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채, 두 감각 사이를 오가며 쉽게 정착하지 않는다. 붙잡으려 할 때마다 손바닥은 비어 있고, 흘려보내려 할 때마다 발밑에는 다시 무언가가 쌓인다. 고정되지 않으려는 이 움직임은 미완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상태에 가깝다. 그렇게 어긋난 리듬 위에서 삶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이어진다. 완결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 계속해서.
삶은 과연 붙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흘려보내야 하는가. 혹은 그 둘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상태 자체가 이미 삶인 것은 아닐까. 길 위에서 나만의 호흡을 발견하는 순간은,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스며드는 때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끝내 설명할 수 없어도,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박자가 있다. 그 박자에 발을 얹는 일.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들 사이를 통과하면서도, 이상하게 무너지지 않는 어떤 리듬. 그 위에서 하루는 다시 시작되고, 또 한 번 이어진다. 붙잡지 못한 것들을 품은 채로도 삶은 계속해서 발을 디딘다. 분명한 결론 없이 흩어지는 이야기의 끝에서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어떤 박자이다.
이 이야기는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함께 품어본 사람에게 어울린다. 이유 없이 발걸음이 바깥으로 향하던 날들을 기억하는 이들,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감각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흘러가던 시간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 이들. 생각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지만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들을 믿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 와닿을 이야기. 음악이 끝난 뒤에도 발끝에 여전히 남아 있던 진동처럼, 이유를 붙이기 어려운 감각 하나를 오래 붙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호흡에 조금 더 가까이 닿을 것이다.
✏️도서출판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