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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평점 :
슬픔은 보통 자연스레 닳아 없어지는 감정이라고 배운다. 시간은 무딘 칼처럼 모든 것을 조금씩 깎아내고, 끝내는 기억마저 희미하게 만든다고. 그러나 <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은 그 익숙한 믿음을 부정한다. 사라진 것은 사라진 채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손에 잡히지 않기에 더 또렷해지고, 닿을 수 없기에 마음 한 켠에 더 깊이 스며든다. 잊힘이 아니라 각인에 가까운 방식으로 슬픔은 사람 안에 남는다. 그래서 애도란 끝을 향해 수렴하는 과정이 아니라, 끝내 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계속해서 손을 뻗는 일이다.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또렷해지는 것들. 그래서 슬픔은 소멸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머무를 뿐이다. 그 잔상은 마음의 안쪽을 오래 머물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 속 상실은 하나의 사건으로 멈추지 않는다. 도난당한 물건을 좇는 시선과, 떠나버린 이를 더듬는 기억의 반복은 서로를 닮아 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은 한때 존재했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려는 몸짓에 가깝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머물렀던 손길, 함께 지나온 계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전체를 함께 놓쳐버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손을 거두지 못하는 마음. 그 모순된 움직임 속에서 슬픔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을 다시 손에 쥐고 싶다는 충동, 그 집요함이야말로 애도의 한 단면일 것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애도를 ‘놓아주는 일’, 곧 정리의 언어로 이해해왔다. 놓아주어야 하고, 흘려보내야 하며, 결국은 덜 아파야 한다고. 그러나 슬론 크로슬리는 그 문장을 뒤집는다. 애도는 비워내는 기술이 아닌, 이전과는 다르게 붙드는 방식이다. 떠난 이를 지워내는 대신, 다른 자리로 옮겨 앉히는 일. 손에 잡히던 존재를 마음의 내부로 들여와 기억 속에 머물게 하고, 일상 속에서 계속 호명하며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게 하는 일. 사라진 관계를 지우지 않고 형태를 바꿔 이어가는 일. 그렇게 애도는 끝맺음이 아닌 변형의 과정이 된다. 관계는 단절되지 않는다. 단지 감각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감각할 수 없는 자리로 이동할 뿐이며, 슬픔 또한 그 이동을 따라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애도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관계를 견디는 힘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에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남는다. 왜 그런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왜 하필 그 순간이었는지, 무엇이 그를 그곳으로 밀어 넣었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는 반복되지만 답은 완성되지 않는다. 남겨지는 것은 이제는 내 곁에서 사라진 그것의 침묵뿐이다. 그 침묵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그 자리를 비워두지 않은 채, 그 위에 얇게 숨을 얹듯 머무르는 것. 이해에 이르지 못한 채로도 계속 살아가는 태도. 그것은 체념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조용한 방식이다. 해석되지 않는 고통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고, 그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를 품고 가는 일. 이해할 수 없음과 함께 머무르는 일. 설명되지 않는 상실을 서둘러 억지로 봉합하지 않는 일. 어쩌면 그것이 애도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는 다시 이어진다.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반복되는 일상은 슬픔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지속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사라진 것들은 사라지지 않은 채 함께 흘러간다. 문득 스치는 기억 하나, 이유 없이 멈추는 발걸음,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그것들은 일상 사이사이에 끼어든다. 삶은 멈추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무게를 안고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잊지 않은 채 살아가며, 사라진 이를 여전히 품은 채 하루를 건너간다. 애도란 결국 떠난 존재를 완전히 놓지 못한 채 그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속으로 스며들어 조용히 형태를 바꿔갈 뿐이다.
상실을 한 번이라도 통과해본 사람, 그러나 그것을 아직 끝난 일로 정리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래 머물 것이다. 떠난 이를 잊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며 밤을 지새본 적 있는 사람, 혹은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던 사람에게도 이 이야기는 울림을 줄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관계’로서의 슬픔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이 끝내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이 책은 하나의 다른 길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때로는 위로가 아니라 낯선 압박처럼 느껴졌던 이들에게-이 책은 말한다.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떠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함께 머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