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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평점 :
생명은 언제부터 값으로 환산될 수 있게 되었을까. 어떤 삶은 너무 가난해서, 선택이 아닌 삭제된 가능성 위에 서게 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때, 인간은 스스로를 결정하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 놓인다. 삶은 점점 계약의 형식을 닮아가고, 몸은 하나의 기능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계약이라는 형식은 언제나 깔끔한 문장으로 완결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정은 끝내 문장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남겨지는 것은 늘 설명되지 않는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애초에 인간이 단순한 조건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때로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아무리 정교한 조건과 문장이 덧붙여지더라도 우리가 끝내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대리모라는 제도는 생명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이해하려 한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 수정, 임신, 출산, 그리고 인도. 각각은 분명히 구분되고 역할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경계 사이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든다. 하나의 몸을 통과하는 동안, 생명은 이미 누군가의 기대와 두려움,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감각들을 함께 품는다. 몸은 분명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까지 완전히 목적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그 틈에는 끝내 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 감정이 남는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묻는다. 생명은 사랑 없이도 완성될 수 있는가. 혹은 사랑이 배제된 자리일수록 더 강하게 사랑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요구는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언제나 관계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듯 보이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오히려 가장 흔들리는 것이 된다. 확실해야 할 것이 불확실해지고, 불확실해야 할 선택이 오히려 관계를 지탱한다. 누군가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고도 관계를 이어가려 하고, 누군가는 끝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을 고른다. 그렇게 관계는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 위에 놓인다. 주어진 조건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결국 스스로의 몫으로 남는다. 관계는 결국 선택의 다른 이름이 되고, 그 선택은 누구에게도 완전히 전가될 수 없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끝내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선택 이후에 남겨지는 책임은 각자의 삶에 스며든다.
이 작품을 읽는 일은, 어떤 판단에 도달하기보다 판단 이전의 감각에 오래 머무는 경험에 가깝다. 옳고 그름을 나누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얽혀 있고, 쉽게 이해했다고 말하기에는 자꾸만 어긋나는 지점이 남는다. 그래서 독자는 해석하기보다 되묻게 될 것이다. 왜 이 장면이 불편한지, 왜 이 선택이 납득되지 않는지.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규정되지 않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해는 종종 결론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이 된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머무는 자리에서, 비로소 인간은 하나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순간, 타인의 삶 또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의 장면이다. 모든 계약과 조건이 끝난 자리에서 한 사람은 끝내 나누지 못한 것을 선택한다.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위에 내려앉는다. 인간은 언제나 계산된 선택 속에서도 계산되지 않는 것을 남긴다. 그리고 그 남겨진 몫이야말로 끝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마지막 흔적이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유도, 어쩌면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서보다,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흔들리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더 깊이 남을 것이다. 인간의 선택이 어디까지 자유로운지,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구의 몫으로 남는지를 고민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쉽게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관계가 혈연이나 제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 감당해야 하는 태도 위에 놓인다고 느껴본 이들에게 이 작품은 오래 남는 질문이 된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싶은 사람보다, 무엇이 끝내 설명되지 않는지를 마주할 수 있는 사람에게 더 어울릴 이야기.
✏️도서출판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