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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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배워왔다. 서로를 향해 서 있는 두 개의 시선, 그 사이를 채우는 감정의 밀도. 그러나 <애인의 애인에게>는 그 익숙한 구도를 무너뜨린다. 사랑은 결코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같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붙잡고 있는 감정의 결은 끝내 다르다. 사랑은 공유되는 감정이 아닌, 각자가 혼자 감당하는 고유한 경험이다. 서로를 향해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사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이 어긋남이야말로 사랑의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어긋남을 사랑이라 부르기 위해 애써 같은 이름을 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한 문장으로 잘라 말할 수 있는 이 진실은, 그러나 쉽게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같은 순간을 지나왔음에도, 서로가 전혀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둘의 언어로 유지되지 못한다. 하나의 감정이라 믿었던 것은, 각자의 내부에서 서로 다른 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끝난 마음을 붙들고 있고, 누군가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감정을 기다린다. 그 미묘한 어긋남은 선택이나 실수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구조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랑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그 엇갈림은 필연에 가깝고, 그래서 더 고요하게 잔인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끝내 같은 장면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처음부터 같은 장면 위에 서 있지 않았던 것에 가깝다.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믿는 동안에도, 각자는 전혀 다른 의미의 장면을 살아낸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문제로 옮겨간다.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가 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 자크 라캉이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 욕망한다고 믿지만, 실은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기에. 이들의 감정은 상대에게 곧장 닿지 않는다. 언제나 한 번 비켜가고, 한 번 늦게 도착한다. ‘애인의 애인’이라는 위치는 그 우회의 궤적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사랑은 대상에 닿기 전에 이미 타인의 시선을 경유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형태를 바꾼다. 그래서 사랑은 충만해지는 대신 점점 더 또렷한 결핍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사랑은 정말 둘만의 세계일까. 사랑은 언제나 제3자를 품고 있다. 이미 지나간 관계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수많은 기억들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가 지나온 시간과 그를 스쳐간 모든 관계를 함께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감정 속으로 계속 스며든다. 그래서 사랑은 단일한 관계가 아니라 여러 겹의 시간이 포개진 상태에 가깝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 사이에는 이미 수많은 타인의 그림자가 겹쳐져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종종 타인의 자리를 대신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부재를 채우려 애쓰기도 한다. 사랑은 그렇게 나의 감정이면서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닌 감정으로 남는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외면할 수 없는 마음.


결국 사랑은 두 사람이 완성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시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남긴 자국에 가깝다. 한 사람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감정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다른 형태로 이어진다. 이해하지 못했던 사랑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만 희미하게 감지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감정들 위에 뒤늦게 붙여진 하나의 이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름은 끝내 하나의 의미로 머물지 못한 채, 계속해서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는지조차 확정되지 않은 채로.

✏️도서출판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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