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루스트 - 삶의 슬픔과 희열, 위로와 예술을 알려준 우리들의 프루스트를 찾아서
김주원 외 지음 / 현암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프루스트>를 펼치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자들의 이력이다. 교수, 번역가, 피아니스트, 통역사, 연구자, 극작가, 연출가까지.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살아온 이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여 있다. 공통점은 단 하나, 프루스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 삶의 어떠한 선택을 감내해왔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의 문장 곁에 머물기 위해 삶의 진로를 선택했고, 누군가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번역하고, 연주하고, 무대 위로 옮겼다. 10인의 저자에게 프루스트는 같은 이름이되, 결코 같은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은 그 해석의 차이를 존중하며 엮은 열 개의 고백이자, 하나의 합창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언제나 거대하다. 그의 소설 제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박수갈채가 따라붙고, ’프루스트 현상‘이라는 단어 하나로 기억과 문학을 소환한다. 하지만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늘 지키지 못한 약속에 가깝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올해는 꼭 읽어야지 하다가도 매번 손에서 미끄러지는 목표. 그 거대함 앞에서 변명부터 늘어놓게 된다. 그래서 <나의 프루스트>라는 책은 나에게 참 반갑다. 거대한 작품 앞에 서기 전에, 먼저 프루스트라는 한 인간을 여러 시선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나 역시 나만의 프루스트를 조금은 만난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스며들 프루스트를 잘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머리말에서 저자들은 분명히 말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이 길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대신 열 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프루스트를 사랑해온 이유를 보여주겠다고. 이 태도는 권위자의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프루스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해온 애독자의 수줍은 고백에 가깝다. 봉준수는 길이를 미덕으로 복권시키며, 순간을 늘이고 망각을 포용하는 독서를 제안한다. 김주원은 음악의 정적 속에서 상실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윤혜준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통해 읽기와 쓰기가 서로를 위협하는 긴장을 드러낸다. 이 글들은 프루스트를 설명하기보다, 프루스트를 통과한 자기 자신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오선민의 글은 이 책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일상의 사소함을 포착하고 끝까지 사유하는 힘. 실패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글감을 길어 올리는 태도. 글쓰기는 시간을 되찾는 일이며, 언어는 감정의 격랑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도구라는 그의 말은 프루스트의 윤리를 오늘의 삶으로 옮겨온다. 비주류였던 프루스트, 죽음 앞에서 프루스트를 붙잡은 독자, 각색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상상하는 극작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다시 읽히는 프루스트, 애도와 행복을 번역하는 문학의 책무까지. 이 책은 프루스트가 하나의 정답이 아닌, 읽는 자 개개인에게 열리는 해석의 답안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한 길잡이나 지도가 되기보다는, 지도 앱에 남겨진 한 장소의 리뷰에 가깝다. 더 날것이고, 더 주관적이며,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간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향한 저자들의 애정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에 선하다. 각자의 경험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문장들 덕분에, 프루스트와 그의 작품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고전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야 될, 이미 약속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프루스트를 읽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며, 각자의 시간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말은 이상하게도, 다시 한 번 그 거대한 소설을 향해 발을 내딛게 만드는 조용한 용기가 된다. 그렇게 나는 아직 오지 않은 프루스트를 기다리며 서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은 여전히 길고, 그래서 이 책을 덮은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현암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