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점 지하 대피자들
전예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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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지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대개 설명되지 않고 사라진다. <매점 지하 대피자들>은 그 사라짐의 끝에 ‘아래‘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 곳은 정상 사회에서의 실패나 이탈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삶의 형태로서의 ‘아래’이다. 적강산의 매점 지하, 스스로 땅을 파 내려가 만들어낸 임시 거처는 실패한 사람들의 은신처이자, 정상 사회의 규칙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일종의 무중력 지대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회복도, 성장도, 복귀도 요청되지 않는다. 다만 존재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 조건만이 허용된다. 이곳에서 삶은 다시 계획되지 않고, 잠정적으로 유지된다. 위로 올라갈 의지도, 완전히 사라질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선택한 깊이는 결국 살아 있으려는 마지막 자세에 가깝다.

땅굴은 노동으로 일궈낸 단순한 공간이 아닌 존재 방식이다. 각자가 삽을 들고 자기만의 폭과 방향으로 파 내려가는 굴은 타인에게 쉽게 내어줄 수 없는 생의 최소 단위이자, 사회가 요구하는 동일한 궤도로부터 벗어나려는 미세한 저항처럼 보인다. 정상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과 복귀의 언어 대신, 이곳에서는 오늘을 넘기는 법과 체온을 나누는 법이 공유된다. 이곳의 사람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경계하고, 돕지만 끝내 구원하지는 않고,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책임 없는 다정함, 지속을 약속하지 않는 관계. 인간은 언제나 연결을 갈망하지만 그 연결이 반드시 완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불완전한 연대가 바로 이 소설의 윤리인 것이다. 그 곳에서의 소속감은 제도적 안정이 아닌 정서적 은신에 가깝다. 서로의 사정을 완전히 알지 못한 채 같은 깊이에 머무는 사람들, 다른 이들이 모르는 금 안으로 잠시 들어섰다는 감각. 인간에게 소속감이 중요한 이유는 보호 때문이 아닌,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 아닐까.

지하에서의 시간은 기묘하게 재편되어 목적을 잃는다. 하루는 아침과 저녁으로 분절되지 않고, 미래는 계획되지 않는다. 오후 여섯 시의 아침밥, 금요일마다 이어지는 강의와 잡담, 의미 없어 보이는 기록과 일. 이 반복은 삶을 회복시키기보다는,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장치처럼 보인다. 이 공동체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지 않는 법, 지금을 버티는 법,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줄 아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래를 설계하지 않음으로써 오늘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처럼 읽힌다. 지금에 집중하라는 요청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현대의 시간 감각을 정면으로 겨눈다. 우리는 늘 나중을 위해 오늘을 미뤄두고, 언젠가를 조건으로 현재를 삭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속의 평형은 끝내 지우고 싶던 기억과 외부의 시선 앞에서 흔들린다. 묻혀 있던 과거가 비와 함께 드러나고, 지하를 지탱하던 흙은 붕괴의 징후를 보인다. 장대비와 산사태는 우연한 재난이기보다 감정의 물리적 형상이다. 오래 삼켜온 말들이 비가 되어 쏟아지고, 눌러두었던 기억들이 흙과 함께 무너진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터져 나오는 것들. 이 소설은 견디는 삶에 머물지 않고, 무너질 수 있는 삶까지를 포용한다. 끝내 이들이 붙잡는 것은 서로의 체온이다. 완전한 구출도, 명확한 결말도 없는 자리에 남는 것은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말뿐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내려가야 비로소 지금을 살 수 있는가. 작가는 말한다.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지하에서의 삶이 곧 실패는 아니라고. 살아 있으려는 방식은 하나가 아니며, 때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선택이 가장 솔직한 생의 형태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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