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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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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인 아홉 살 꼬마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빠를 잃었다. 아빠는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던 때에 죽었고, 아빠가 거기 세계무역센터에 갇혀있었던 그때, 오스카는 자동응답기를 통해 터져 나오던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너 거기 있니?” 공포에 젖어 다급하게 외치던 아빠의 목소리에 당황한 어린 오스카는 두려움에 전화를 받지 못했고, 그 후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직접 통화하지 못한 것이 마치 아빠의 죽음의 원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오스카는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과 죄책감을 잊기 위해 엉뚱한 추리를 하는 과정에 만난 노인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 간다. 결론은 아무리 아파도 잊어야 할 것은 잊게 될 것이며, 그렇다고해서 아픈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산 사람은 산 사람끼리의 사랑으로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인생에 왔다가 가버리냐!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놔야 해!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들이 떠날 땐 잡지도 말아야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9.11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정치적인 시선은 배제한 채로, 한 인간의 개인적 비극과 그를 극복해 내는 여정으로 그렸다.

 

 

신사 숙녀 여러분, 기장이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19951220, 마이애미 국제공항을 출발해 콜롬비아 칼리로 향하던 아메리칸 항공 965편은 착륙 직전 산에 충돌해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159명이 사망했다. 비행기는 미 북동부의 겨울 폭풍으로 인해 2시간 늦게 이륙하였다. 몇몇 승객들은 출발 지연에 의해 비행기를 놓치거나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기도 했다. 그들은 운이 좋았던 사람들로, 사고 후 965편을 피하게 된 우연을 행운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엄마는 죽을 거고, 나 혼자 남겨놓을 거예요. 965편을 피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사람 축에 들지 못했던 탑승객들 명단에는 마야 프리츠의 엄마인 일레인 프리츠가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어떤 경로(실제로, 사고 직후 추락한 비행기의 항공 전자기기를 비롯한 비행물품이 도난 되었고, 도난품들은 이후 마이애미의 브로커들 사이에 형성된 암시장에서 다수 발견되었다)를 통해 사고 비행기의 블랙박스 녹음 테잎을 입수한 마야는 기장과 부기장이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과 사고 당시에 나누던 대화를 듣고 듣고 또 듣는다. 마치 그들의 대화 속에서 엄마의 이름이나 죽기 전 엄마의 상황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반복해서 녹음을 듣는다. 엄마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안토니오. 왜 엄마가 그 비행기를 타야 했을까요? 왜 직항이 아니었고, 왜 그토록 운이 나빴을까요? 운이 나빴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죽음들이 있다. 어째서 그때 그 비행기에 있었을까, 그 다리를 지나고 있었을까, 왜 하필 그 건물에, 그 배에, 그곳에 있었을까. 그건 운명이라던가 운이라던가 하는 비과학적이고 비전문적인 말로 밖에는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칼리로 향하던 965편을 어떤 이유로 놓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놓친 사람을 대신해 비행기에 오른 사람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야를 더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껴안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었겠는가. 마약을 운송하는 일을 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20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마야의 아빠 리카르도 라베르데는 사고 비행기의 블랙박스 녹음 테이프를 입수한 후, 거리에서 총격사고로 죽는다. 소설의 화자인 안토니오는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총에 맞을 당시 같이 총격을 당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총상을 회복한 후에도 안토니오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는 없었던 일처럼 비극을 잊는 대신 라베르데의 죽음을 추적하며, 자신이 겪은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위해,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안토니오 역시 라베르데가 총을 맞게 된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이 뒤틀려 버린 것이 바로 그 총격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만난 마야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라베르데가 죽기 전 들었던 녹음테이프가 1995년 추락한 비행기의 블랙 박스였으며, 비행기에는 라베르데의 아내이자. 마야의 엄마인 일레인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토니오는 녹음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마야를 힘껏 껴안는다.

 

나는 그때 일어난 일을 바꿀 수도 없었고, 녹음테이프에서 흐르는 시간, 이미 지난 순간을 향해, 결정적인 순간을 향해 가고 있던 시간을 정지시킬 수도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끼리 체온을 나눈다. 체온을 나누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사실은 체온을 나누는 그 행위가 모든 것을 되살린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보내고, 또 모두가 모두를 잊는다. 그래야만 살아지니까.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영원히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스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고 불현 듯 아빠의 죽음이 떠오를 테고, 다소 희석이 될망정 아빠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죄책감 또한 계속될 것이며, 엄마가 왜 그 비행기에 탔는지 모르겠다는 마야의 탄식도 계속될 것이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휴가 보내시고, 1996년은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기장이 녹음테이프에서 말하고 있었다.‘저희 항공편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의 배경이 된 20세기 말의 콜롬비아는 마약 밀매와 관련된 불법 행위와 통제되지 않는 폭력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였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거나, 폭탄이 터지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때로는 비행기가 추락하기도 했는데, 전국가적인 폭력의 광기에 휘둘린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1995년의 비행기 사고는 테러와는 관련없는 조종사의 실수로 밝혀졌다.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혼돈의 시절에 콜롬비아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개인의 비극을 꼼꼼하게 풀어냈다.

 

뭐라고요? 아저씨도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라고 어린 왕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조종사에게 묻고 있고 그리고 나는 그렇다고, 나 역시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지만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참고할 만한 블랙박스도 전혀 없고, 리카르도 라베르데의 추락에 대한 블랙박스도 전혀 없다고, 인간의 삶에는 그런 기술적인 사치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338)

 

한편 라베르데와의 총격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 된 안토니오는 라베르데의 죽음에 가리워진 진실을 보아야만 자신이 회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쫓느라 정작 옆에 있는 사랑을 놓치고 만다. 안토니오의 추락은 언제부터 였을까. 총을 맞던 순간부터 였을까? 라베르데를 만나던 순간부터 였을까? 혹시 아내 아우라와 딸 레티시아를 두고 마야를 찾으러 가던 그때는 아니었을까? 아우라가 그만 돌아올 것을 종용했던 그때, 멈출 수 있었다면 안토니오의 추락은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질문은 우리가 과거에 관해 하는 수많은 질문처럼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고, 또한 그 어떤 것도 그후에 발생한 일을 바꿀 수 없다.(17) 오스카가 아빠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해도, 아빠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기껏해야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가지 못한 길에 대해 한탄할 뿐, 자신이 추락하고 있는 동안의 소음도 듣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콜롬비아 문학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무슨 상, 무슨무슨 상 무슨무슨무슨 상을 받았다는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읽는 것은 매우, 몹시, 상당히 지루했다(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라는 나의 믿음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대해 말하자면, 일상과 환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마구 얽혀, 시간 순으로 배열된 사건을 읽는 것에 익숙한 시선으로는 벅찬 책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런일이!!!’를 연발하며 1,2권 통합 629쪽을 읽는 동안 지루한 줄을 몰랐다. 그에 반해,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이 지루했던 이유는, 마약 왕이 판을 치며 개인 동물원까지 만들었다는 20세기 말의 콜롬비아 상황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과거를 되짚어 가며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어떻게 느낄 것이다라는 방식의 글쓰기 스타일이 머릿속에 어떤 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하여 때때로 애꿎은 번역가 탓을 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잘 된 외국문학에 상을 주는 인터내셔날 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문학 인터내셔널 상, 황순원 문학 인터내셔날 상, 이상 문학 인터내셔날 상 등등... 2의 창작이라는 번역문학을 위해 필요한 일 아닐까.

어떤 책은 스포일러를 읽고 나면 본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반드시 스포일러가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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