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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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눈이 멀었던 익명의 도시.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눈을 뜨고 4년 후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국민 투표가 실시된다. 그러나 투표를 한 시민들 중 팔십 삼 퍼센트는 우 또는 좌 그도 아니라면 중도의 어느 한 정당을 선택하지 않고 백지를 투척한다.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낸 백지투표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포기와는 다른 성격의 것으로, 이는 현 정부에 대한 불신 또는 투표의 대상인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백지로 투표권을 행사한 것은 단순히 투표라는 절차가 귀찮다거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반적인 게으름이나 무관심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이었다. 이는 자신들은 현 정부와 정치권을 지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한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국가 전복을 꾀하는 혁명과도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것이었다. 시민들은 일방적인 정부의 지침에 따르는 일개의 투표자가 아니라 아니라, 독자적인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유권자로서 행동하길 원했지만 피를 부르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백지투표를 하다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야.'(132)

정부는 유권자들의 백지투표 사태에 대해 반란, 또는 전염병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며 도시에 게엄을 선포한다. 경찰을 비롯한 모든 정치 기구가 백지투표 사태를 일으킨 도시, 즉 수도에서 철수함으로써 도시의 모든 것이 마비되기를 꾀하고, 도시에 갇힌 사람들이 끝내는 서로를 불신하고 소요를 일으키게끔 은밀한 작적을 펼치기도 한다.

 

이자들은 시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네, 그들은 말했다. 돌이라도 몇 개 던져야 하는 거 아냐, 대통령 인형이라도 태우고, 창문 좀 몇 개 깨고, 낡은 혁명가도 부르고, 자신들이 방금 묻어버린 사람들처럼 죽은 몸이 아니라는 걸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 거 아냐. 시위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도착해서 광장을 메웠다. 그들은 말없이 삼십 분 동안 눈앞의 대통령궁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이윽고 해산했다. 어떤 사람들은 걸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갔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씨 좋아 보이는 낯선 사람에게서 차를 얻어타기도 했다. 그렇게 다들 집에 갔다. (185)

 

무정부 도시에서 혼란을 예상했던 정부의 생각과는 다르게 '눈뜬 자들의 도시' 사람들은 침착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며 행동한다. 이들은 눈먼 자들, 즉 눈을 뜨고 있으되 보지않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 것을 알았고, 안것에 대해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 새로운 음모를 펼치는데, 이른바 백지투표를 주도한 주모자를 색출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목한 주모자가 실제로 백지투표를 주도했건 안했건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백지투표라는 전국민적 행위를 전염병 쯤으로 돌리고, 15세기에 있었던 마녀사냥과 같은 희생양을 처단하는 과정을 통해 대국민 앞에 정부의 기능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 권력자들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인할 수 없고, 빠져나갈 수 없고, 반박할 수 없고,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증거의 무게로 눌려버리기를 바라오.(322쪽)​

2002년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두명의 여중생의 사인 규명과 추모를 위해 처음 열린 촛불집회는 그 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로 이어졌다. 이후 촛불 시위는 대한민국의 평화로운 시위문화로 자리잡았다.  또한 집회는 주도세력이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으로 참여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것에 의문을 갖고, 주도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눈뜬 자들의 도시가  바로 여기 서울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은 책을 읽는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가 <눈뜬 자들의 도시>를 쓰기 9년 전에 발표했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였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본 것을 알고,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비관적인 편인 나는 눈뜬자들의 도시 사람들은 절대로 권력을 이길 수 없다고, 결국 언제나 승리는 저들의 몫이였다고 결론지었다 우리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앞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고, 그리고 우리의 신념은 시간과 함께 무뎌지기 쉬우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 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143쪽)

주제 사라마구 역시 사람과 세상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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