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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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에 언젠가 제게 물어보셨지요. 어째서 제가 아버지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느냐구요. 그때 저는 여느 때처럼 아버지께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아버지한테 느끼는 그 두려움 때문이었구요, 또 한편으론 그 두려움의 근거를 설명해드리기엔 구구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말로는 어느 정도나마 알아들으실 수 있게 잘 간추려 말씀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대답을 드리고자 하는데 그것도 온전하게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두려움과 그 여파가 아버지께로 향하는 제 마음을 가로막을 것만 같고 이야기해드릴 내용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제 기억력과 제 이성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9쪽)

 

자식에게 부모는 양육자, 보호자, 지지자인 한편 육체를 존재케했다는 이유로 정신까지도 간섭을 하려드는 조정자이며, 그런면에서 자식의 행위에 대한 심판자이기도 하다. 반면 부모에게 자식은, 자신이 만든 것으로 여겨지는, 그러므로 모든 것을 희생해 책임지고 돌봐야 할 약한 존재인 동시에 부모 자신이 살지 못한 세상을 대신해서 살 수도 있는 분신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기지 않고서야 자식의 세계에 대한 부모의 끊임없는 간섭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물리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권력은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권력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은 옳은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에는 희생이 따르고 희생은 권력자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부모는 자식의 어여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자녀에게 이양하기도 한다. 힘은 부모에게 있으되 그 힘에 휘둘리는 것은 자녀가 아닌 부모 자신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적인 부모 자식 사이의 권력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 탁구공처럼 그때그때 주고받으며 넘기고 넘겨받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피상적인 수준에만 머무르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있으니, 그러한 관계에서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치르는 희생의 대가로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그렇지만 억압당하는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희생은 부모의 이기로 부터 출발한 것이므로 부모가 강요하는 절대 복종에 수긍하기 힘든 자녀도 종종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나는 항상 어머니에게 기가 눌려 있었고, 그때문에 가끔 악몽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무의식 속에서도 어머니란 존재는 나를 억압하고 때때로 모욕했던 것이다. 그건 사랑도 염려도 아닌 자신보다 미숙한 인간에 대한 정신적인 모욕이었을 뿐이라고, 그 시절의 나는 느꼈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있다는 사실에 무감각한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로 인해 나는 매사가 불안했고, 나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없었으며, 무슨일을 하건 실패할까봐 두려웠다. 어머니가 보고있을 때는 그 두려움이 더 컸는데, 그럴때면 나는 저능아처럼 굴면서 어머니의 잔소리를 자초하곤 했다. 자신없는 내 행동이 먼저였는지, 비웃음을 닮은 어머니의 염려가 먼저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건 나에게 있어 끝나지 않는 굴레였다. 어쩌다가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거친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구구절절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였다면 스스로 나를 못미더워하는 일은 훨씬 적었으리라는 것이다.

 

두려워서 아버지가 두렵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카프카의 글을 읽는동안 내내 울컥하는 순간이 잦았다.  또 다른 비난의 말을 들을까봐 어머니에게 항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떠올랐다. 편지라기엔 퍽 길지만, 어쨌든 170쪽 밖에 되지 않는 이 글을 읽는데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읽다보면 호흡이 가빠져 두페이지를 연속해 읽기가 힘들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토록 고통을 주는 존재여도 괜찮은 건가하는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아니였다면, 카프카의 작품은 조금 덜 난해 했을까. 그랬다면 카프카는 후대에 카프카로 기억되지 못했을까. 사랑받는 느낌으로 충만한 생을 살겠느냐, 문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작가로 남겠느냐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카프카는 어느쪽을 택했을까.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고나니, <성>이나 <소송>에서 권위에 그토록 민감했던 카프카를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다못해 자신을 벌레 취급했던 <변신>에서의 그를 너무도 아프게 공감할 수 있다.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생각해 본다. 훗날 그애도 나를 생각할 때면 못견디게 억울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카프카를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이지만, 부모와의 관계에 또는 자식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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