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마영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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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만화로 그린 엄마의 '열혈연애기'라는 신문 소개글에 홀딱 넘어가 만화책을 샀다. 중학생 무렵 좋아했던 <베르사유의 장미> 같은 만화 이후에는 역사든 학습이든 먹거리여행이든 만화로는 보지 않는 내 취향에 절대적으로 반하는 일이었다. 만화를 무시해서라기 보다는 텍스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림만 봐도 다 알겠는 그런 친절함이 영 어색하기 때문이다. 나는 역시 상상의 여지가 있는 문장을, 문단을, 문맥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어렵게 살았어도 행복했다."로 시작해 연하남, 어용노조, 감금과 폭행, 인간으로서의 엄마들 등의 단어를 구사해 쓴 한겨레 신문 구둘래 기자의 책 소개글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림이 주 언어일 만화지만 뭔가 상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격렬하게 서로의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이를 가는 표지그림 자체도 워낙 압도적이었다. 이 그림에서는 도대체 엄마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품위나 권위를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주저없이 <엄마들>을 선택했다.

 

 

따뜻함, 인내, 희생 등 엄마라는 이름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는 이 시뻘건 표지를 보며, 이미 나는 그 지긋지긋한 엄마의 의미를 넘어설 적나라함에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까지 읽고나자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든 기분이었다. <엄마들>에 등장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내 주변에서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것만 같다. 어쩌면 친구의 친구 이야기라거나, 혹은 소설에서라거나 하다못해 드라마에서라도 한번 쯤은 아니 몇번 쯤은 듣거나 본 이야기 일 수 있을텐데, 그런 이야기는 보통 그 여자라거나, 그 아줌마라거나, 그년이라 시작되었지 우리 엄마라거나, 그 엄마라거나, 걔 엄마라거나 하면서 시작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에게 이 만화책은 이토록 생경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대했던대로 지긋지긋한 엄마의 이미지를 훌쩍 뛰어넘는 적나라함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이럴 수는 없다며 눈 감고 싶은 상황이 된 것이다.

 

<엄마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죄다 무능하다. 경제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하다못해 성적으로도. 그러니 이 만화에 등장하는 엄마들의 삶이 천박하게 여겨질만큼 드세 보이는 것은 전부 남자들 탓인 것만 같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오래된 속어는 진리인 것처럼 여겨질 지경이다.

그러나 역시 엄마는 힘이 세다.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에 등장하는 엄마처럼 제 살붙이를 먹여살려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에서 라기 보다는 세월이, 삶을 어떻든 견뎌내도록 한 세월이 '그녀'를 엄마로 다져놓았기 때문에 힘이 셀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이기 이전에는 그냥 한 여자였으나, 여자를 '엄마' 라는 이름으로 가둬놓는 그 순간부터 연약한 여자를 벗고 강한 엄마가 될 것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작가는 엄마에게 여자라는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던 것이였으리라는 생각이.

 

실제 이름이 順心인 주인공 소연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기댈 것은 남편도 자식도 애인도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아 가고, 엄마는 엄마일뿐 이라고만 막연히 상상했던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삶을 견딘 그녀들에게서 '여자'를 본다. 그제야 비로소 사랑과 질투로 범벅이 된 <엄마들>의 진흙탕을 추하다 여기지 않을 여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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