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피상적인 글쓰기로만 보였던 <보다>에 무던히도 실망해(실린 일러스트들도 크게 한 몫했다) <말하다>를 건너 뛰고, <읽다>를 읽었다. 나의 첫사랑 소설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쓴 작가가 말하는 '책 이야기'이니,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더이상은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라도 <읽다>를 읽지 않을 재간이 없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예약구매를 하면 출간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추첨권을 주겠다기에 덮석 예약구매까지 마치고 열흘을 기다려 받은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역시 훌륭했다. 김영하에게 말과 글로 대운할 상이라고 했다던, 김영하가 이십대에 만난 관상쟁이가 궁금할 정도로.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너는 괴물이다. 반성하라!'고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고, 괴물의 내면을 이야기라는 당의정으로 감싸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시각으로 괴물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도, 토니 소프라노도, 험버트 험버트도, <파리대왕>의 소년들도 아닙니다.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합니다(176쪽).

 

책을 혹은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김영하가 든 이 이유만큼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책은, 소설은 복잡하게 나쁜 나를 이해하고, 단순하게 좋은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무엇이니까.

혹시 나처럼 <보다>에 실망해 다음 시리즈는 사지도 읽지도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던 사람이라도 <읽다>만은 꼭 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단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요하다. 아니, 단지 김영하의 책만을 좋아할 뿐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출판 강연회에서 보니 어떤 이들에게 김영하는 작가라기 보다는 대중스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보지는 않는데, 김영하의 책을 좋아해 다른 책까지 읽게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다만 한가지, 이 책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데는 아직 보르헤스도 칼비노도 읽지 않은 것이 하나의 이유였다는 고백은 해야겠다.

 

그리고 사족,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말.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는 좀 반성했으면 좋겠다. 김영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았을 거다(이 얘기는 출판사는 김영하의 상품성을 믿었다는 얘기도 되겠지!). 커피 한 잔 값이 오천 원을 웃도는 이 시대에 책만큼 싼 물건이 어디 있나 하는 출판계의 자조적인 항변은 중요치 않다. 문제는 그런 생각은 출판사가 아니라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여섯번의 강의를 묶었다고는 하지만(애초 작가의 기획은 김영하가 팟캐스트를 통해 읽었던 책들을 묶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아쉽다. 차라리 그랬다면 책에 대한 김영하의 독자적인 생각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을텐데) 참고문헌을 포함해 219쪽 밖에 되지 않는,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다른 책의 발췌로 채워진, 거기다 그나마도 중간 중간 쓸데없는 타이포그래피나 간지로 장 수를 채운, 이토록 빈약한 책을(질량적인 면에서 시각적 만족감이 매우 떨어진다) 만 이천원이나 받고 팔아먹는 그 장삿속을 좀 반성했으면 좋겠다. 보다, 말하다, 읽다 이 세권이 각각 한 권의 책으로 묶일 만 한 책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읽는이로 하여금(일부일지라도!) 기만당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런 얄팍한 장삿속은 작가에게도 출판사에게도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작가도 소비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떻든 책은 남는다. <읽다>에서 김영하가 말한 것처럼 김영하라는 사람은 가도, 작가 김영하의 책은 그후로도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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