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제인 에어>의 남자 주인공 로체스터에게는 미친 아내가 있다. 그녀는 남편에 의해 감금되어 로체스터의 영지인 손필드 삼층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자신을 감시하는 여자가 술에 취해 잠이 들고나면 종종 아랫층으로 내려가 저택을 헤매이곤 했다. <제인 에어>의 작가인 샬럿 브론테는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에 대해 외모뿐 아니라 행동도 괴물처럼 그렸는데, 결혼식을 앞둔 제인 에어의 방에 한밤중에 침입해 베일을 찢는 모습은 마치 유령의 모습처럼 보일만큼 섬뜩했다.

버사 메이슨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광기를 숨기고 로체스터와 결혼했을 뿐 아니라, 결혼 후에도 술과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광기가 발현한 매우 부정한 여인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로체스터의 증언에 의해 알려진 것 일뿐, 진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버사 메이슨의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과 모습은 로체스터의 불행한 결혼을 강조하고, 그녀를 감금한 그의 행동에 타당성을 주기 위한 장치이다.

일면 타당해 보이는 그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미친 아내를 숨기고 제인 에어와 결혼하려 했던 로체스터의 행위는 범죄이다. 그 시대에도 중혼이 범죄로 성립될 만한 성질의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사 메이슨의 오빠가 그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제인 에어와의 결혼식은 중지되었고, 로체스터는 한 여자가 사랑과 존경을 바칠만 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를 향한 제인 에어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으며, 이를 읽는 독자는 제인 에어의 빗나간 사랑에 대해 안타까워 할 뿐 로체스터의 인간됨됨이라던가, 미친 아내의 내막같은 것은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인공은 강한 자아를 가진 제인 에어이지 제인 에어의 행복한 결혼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인 버사 메이슨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친 아내를 피해 사랑의 도피를 제안하는 로체스터를 거절하고 자신만의 길을 떠난 제인 에어는 이후,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의 유산 덕으로 부자가 된다. 그러나 자존감 높고 독립심 강한 그녀의 성정은 부자가 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화재로 인해 버사가 죽고 로체스터가 불구가 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체스터에게 달려가 사랑과 희생을 바치기로 한다. 해피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결말이 나는 무척 못마땅했다. <제인 에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을 강조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말 할 뿐만 아니라, 로체스터의 비정상적인 행위가 제인 에어의 눈먼 사랑으로 인해 가려지는 듯 했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가 출판 되고 100년 후, 주체적이면서도 지고지순한 제인 에어가 아닌 죽음까지도 몹시 광포했던 미치광이 버사 메이슨에게 집중한 작가가 있었다.

 

모든 일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는거예요. 항상(183쪽)

버사 메이슨은 왜 미쳤을까. 광인의 내력은 정말 그녀 집안의 유전이었을까. 로체스터는 진정 속아서 결혼했던 것일까. 버사는 어떤 성장 배경을 가진 여자였을까. 그녀는 정말 괴물이었을까.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버사는 괴물이 아닌 유령이었다. 그녀의 존재는 하녀들에게까지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진 리스는 여기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남편에 의해 앙뜨와네뜨라는 아름다운 이름마저 버려진 미친 여자 버사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진 리스가 말하듯 모든 일에는 분명 다른 면이 있다. 그러므로 한 여인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재산을 비롯해 그녀의 삶까지 송두리째 가로챈 로체스터의 변명 또한 듣고 싶다. 제국주의적이고 권위적인 가치관을 가진 백인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그런 소설은 익히 알고있듯 무척이나 역겹지만, 문학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허용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 보여주고 독자는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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