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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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다면, 로체스터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 난 후에도 달아나지 않았을 꺼야. 아내의 존재와 관계없이 정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꺼야. 어차피 로체스터의 부인은 정상적으로 아내 노릇을 할 수 없는 상태였잖아. 또 제인은 로체스터를 향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72쪽)' 라고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언제나 항상 늘 고백할 만큼 그에게 빠져 있었잖아. 그처럼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어떻게든 함께 있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정식 부인이 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랑을 포기해야 해? 사랑이 꼭 정식 혼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건 타인중심적인 생각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기쁨보다 남들이 보는 내 위치가 중요했던 것 아니냐 그말이야.  

 

물론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제인과 중혼하려 한 로체스터의 행위는 분명 잘못이야. 범죄와도 같은 거지. 그 사실을 안 제인이 배신감에 좌절할 수 있지. 또 자신을 속인 로체스터에 대해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분노할 수도 있지. 아니, 분노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지. 그러나 제인은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난 후에도 로체스터에 대한 사랑이 변한 건 아니라고 하잖아. 헐..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을 기만한 로체스터를 벌하기 위해 그로부터 불현듯 사라지는 것을 택했다고, 그래서 로체스터가 고통받길 바란다고 했다면, 그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야. 사랑한다면서 그 사랑을 속이려 한 로체스터의 태도는 그것이 아무리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해도(사실 불가피한 일도 아니였지!), 그의 인간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거든. 로체스터는 제인의 생각과 달리, 돈과 가문에 기대어 사는 그저그런 한량에 지나지 않는 인물이었던거지. 그렇지만 제인은 로체스터의 기만을 알고난 후에도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132쪽)고 고백해. 로체스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지경이니, 그정도의 잘못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노라 여겨주겠다는 태도였어. 이에 로체스터는 아내가 있는 손필드를 떠나 유럽으로 가서 살자고 해. 그러나 제인은 정부만은 되지 않겠다며 로체스터로 부터 달아나. 제인 에어의 이런 다부진 결행을 자존감과 독립심으로 연결하는 일반적인 해석이 나는 정말 마음에 안들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이건 좀 이상적인 여성성에 대한 지나친 로망 아냐?

 

제인 에어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친부모를 여의고 외숙모의 손에서 사촌들과는 표나게 차이나는 대우를 받으며 생후 10년을 보냈어. 외삼촌도 없는 집에서 제인은 외숙모에게 어린 아이가 견디기엔 가혹한 대접을 받았던 거야. 사촌들과 하녀들도 부모가 없는 어린 제인을 가엾게 여기기보다 자신들의 삶에 끼어든 불청객쯤으로 여겼어. 열 살이 된 제인은 사촌들과 불화하고 자신을 표나게 구박하는 외숙모에게 대들다가 자선학교로 보내져. 제인은 자아가 강한 아이였어. 쫓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선학교로 떠나면서 자신을 이렇게 대접하는 외숙모를 평생 찾지 않겠으며, 거짓말쟁이이고 못된 아이는 자신이 아니라 사촌들이라는 독설을 퍼부어. 이제 겨우 열 살 된 애가 말이야. 제대로된 사랑이나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제인에게 남은 건 독기였던 거지. 말하자면 기댈 곳 없는 어린 아이가 자신을 버리는 어른을 향해 최후의 발악을 했던거지.

 

한편 자선학교에서 제인은 예의 그렇듯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어. 학교를 운영하는 목사가 이중인격자이며, 수전노였던 거지. 그러나 다행히 좋은 선생님과 친구를 만나 세상이 자신을 꼭 차별만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긴했어. 또한 더 높고 큰 사랑은 '신'에게서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도 했지. 그렇지만 어쨌든 제인은 성장기 내내 사랑과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거야. 그럼에도불구하고 제인 에어에게는 불굴의 자존심이 있었지. 자신은 독립적이며, 절대로 지지않겠다는 오기같은 것이 있었던 거야. 나는 그 오기가 참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섬뜩할 때도 있었어. 어린아이가 야무지다 못해 독기를 품는 모습은 사실 좀 안예쁘거든. 그건 왜 그런걸까? 나의 내면을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해.

 

어쨌든 보통의 사랑받지 못한 존재는 이후의 전생애 동안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의 정석이지. 그러나 제인은 그렇지 않았어. 사랑 앞에서도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언제나 당당했던 거야.

제인은 가정교사로 들어간 부잣집에서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주인남자에게 빠지게 돼. 세상 경험이 없는 열여덟 살의 아가씨가 모든 것에 능숙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거야. 로체스터는 제인이 모르는 세상을 두루 경험한 탄탄하고 여유있는 남자였던 거야. 제인은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바치길 원해. 그런데 이 영악한 제인은 경험도 없으면서 남자를 희롱할 줄 알아. 그녀는 그냥 대번에 자신을 주어버리지 않고 밀당을 하네. 세상을 두루 떠돌며 온갖 경험을 다 한 로체스터는 세상물정 모르면서 까부는 이 순둥이 아가씨에게 색다른 매력을 느끼지. 드디어 제인은 로체스터의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는거야. 그런데 육체적인 만족보다 정신적인 희열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제인은 보석으로 칠갑을 해주겠다는 로체스터의 제안 같은 건 단칼에 물리칠 줄 알아. 그런것쯤은 자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나는 제인의 이런 점이 참 이상했어.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이 상대방이 보여주는 사랑의 증거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거 말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제인 에어가 돈으로 부터 초연했던 것, 정부는 되지 않겠다고 로체스터로 부터 달아났던 것, 그후에 장님이 되고 다리를 절게 된 로체스터를 완전하게 사랑하며, 평생을 희생하고 살기로 결심하는 점 등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않아. 그건 작가인 샬롯 브론테가 세상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야. 목사의 딸로 태어나 훗날 목사의 아내가 된 샬롯답다는 생각까지 들어. <제인 에어>는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씌인 소설이라지만, 내 눈엔 전혀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아. <제인 에어>가 150년도 더 된 소설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되지. 물론 그렇긴하지만, 여성주의적 시각이였다기 보다는 그시대의 사회상에서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인간은 물질에 초연해야 하고, 외모를 비롯한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 다는 점을 강조한 거지. 물론 그 희생은 여자에게만 강요된다는 점도 중요해. 그 증거로는 로체스터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자기 아내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한 인간으로써 존중하지도 않았지. 뿐만아니라, 독립적이지만 순종적이기도 한 제인은 손을 비롯한 체구가 작다는 점이야. 로체스터는 이점을 책 전체에서 몇 번이나 강조해서 되뇌곤 하는데, 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의 아내나, 욕심 사납고 속물적인 이유에서 로체스터와 결혼하려 했던 잉그램은 체구가 크게 묘사되면서 희생적인 제인과 대조되잖아. 이건 분명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해.

샬럿은 그 시대가 허락하는 도덕적 테두리 안에서 억압된 자신의 욕망과 밀당하며, 제인 에어라는 인물을 창조해 낸거지. 제인 에어는 문학사에서 자아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인 중 한명으로 내내 추대돼. 물론 나는 인정하지 않지만.

 

건전한 영국 교육은 그녀의 프랑스적인 결점을 많이 교정해 주었다. 그래 그녀가 학교를 졸업했을 때엔 붙임성 있고 얌전한, 양순하고 상냥하고 절조 있는 나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423쪽).

 

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선량하고 성실한 제인이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이 남기고 간 재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된다는 설정이야. 제인 에어를 읽는 소녀들과 처녀들은 이렇게 생각해야는 거지? 아 세상을 사는데 외모나 돈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언제나 선량한 마음으로 자신과 신을 믿으며 나아갈 때 지복이 주워지는 거야! 라고.

그렇지만 나는 이따위 설교집 딸에게 절대 추천하지 않을꺼야. 물론 딸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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