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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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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노우, 판타지라니

소설이건 영화건 판타지 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반지의 제왕>도 <해리포터>도 보지않았다. 전체적인 맥락은 그렇다쳐도, 도대체 말이 되지않는 장면들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현상이나, 일어날 법 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이 영 거북스러운 것인데,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표현한들 한마디로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용이 날고, 도깨비가 튀어나오며, 반지만 끼면 모습이 사라진다거나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다는 얘기는 꼬마들의 그림책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작가나 혹은 등장인물들끼리만 이해하는 모종의 진실을  만들어두고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합네 하는 그런 이야기는 어쩐지 낯뜨겁다. 나는 판타지도 영웅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뇌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파묻힌 거인>을 받아들고 몹시 당황했다. 처음부터 이건 '대놓고 판타지'라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즈오 이시구로가 아닌가. 나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매력

복제인간들의 사랑을 그린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탄생한 클론들의 존재를 용인할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나는, 그후로 <남아있는 나날>과 <창백한 언던 풍경>을 지나, 단편집 <녹턴>까지 모조리 찾아 읽을 정도로 가즈오 이시구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흡인력으로 마지막까지도 책을 놓을 수 없게 했으며,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나를 긴장시켰다. 나는 그 속에서 어김없이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식간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과 공감하게 하는 힘, 그것이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의 매력이다. 그러나 <파묻힌 거인>만은 '포기다' 싶었다. 아무리 이시구로라도 나에게 판타지는 무리이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서사보다는 등장인물의 삶과 내면적 심리 풍경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책장을 덮는 순간 삶의 진실에 맞닿아 있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478쪽).' 라고 한 옮긴이의 말은 내가 느낀 <파묻힌 거인>에 대한 감상과 너무도 꼭 같다. 4부의 막바지에 이르며 다다르는 진실에 책장을 넘기는 손은 바빠졌지만, 마음은 좀더 오래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제서야 나는 이야기의 형식이 아닌 작가의 메세지에 빨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라면

공상과학이든 판타지든 지금까지 읽은 이시구로의 책들은 작가가 전하려는 메세지가 분명하게 읽힌다. 작가인 이시구로와 독자인 나의 주파수가 맞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시구로가 소설을 통해 추구하는 진실의 형태가 모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상상불가한 판타지적 요소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전의 책들에서 느꼈던 놀라운 흡인력을 <파묻힌 거인>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고, 작가의 메세지를 확인하는 순간 이 소설은 나에게 있어 더이상 일어날 법 하지 않은 판타지가 아니었다.

<나를 보내지마>의 주인공들이 장기이식을 위해 복제된 사람들이며, 그들은 주고 또 주다가 더 줄게 없어진 그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해한 후, 그들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이거나, '나'와 관련된 가족들이었어도 복제인간들의 존재에 대해 부정할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그때와 똑같은 심정으로 떨리는 밤을 보낸 것이다. '나'라면 봉인된 기억을 되살려 내 개인적 삶을 추억할 것인가, 오히려 기억과 함께 진실을 밀폐하는데 가담해 당분간의 평화를 유보할 것인가.

 

기억이라는 거인

<파묻힌 거인>의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소한 추억뿐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인생을 바꿀 정도로 엄청났던 사건까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또한 과거를 잃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닌 집단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은 전쟁을 비롯한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망각 덕분에 서로다른 종족간에 증오도 복수도 잊은채 평화로운 것이다. 이쯤되면 망각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권장되어질 만한 선행으로 보인다. 인간 세상에 전쟁이 없을 수 있다면, 원망과 증오가 사라진다면, 그까짓 개인적 추억쯤 얼마든지 잊어도 좋을 일 아닌가. 또 개인적인 추억이라고해서 반드시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살면서 잊고 싶은 과거 한둘은 누구나에게 있는거니까. 그러니 망각은 분명 좋은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말 잊어도 좋은 것일까. 과거에 전쟁이 있었고, 전쟁 중에 지키기로 한 종족간의 약속은 무시되었다. 평화를 만든다는 대의아래 부녀자와 아이들은 죽임을 당했으며, 그 사실은 잊혀졌다. 전쟁과 살육에 대한 기억은 증오와 복수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파묻힌 거인>을 읽으며 나는 기억을 잊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졌다. 기억을 끊어내지 않으면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테고 복수 역시도 되물림될 터, 그러니 인간사에서 피의 역사를 끊어 내기 위한 것이라면 과거에 당한 억울한 사정은 그만 잊는 것이 맞지않겠는가.

 

그렇지만 정말 잊어도 좋은 것일까. 기억하지 않는다면 힘을 쥔 자들은 개인의 생각과 과거를 지배하고 역사를 왜곡하려 들 터인데? 증오를 끊어내고 복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과거의 기억을 잊지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힘을 쥔 자들의 행태를 똑똑히 기억해 다시 되풀이 되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기억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시구로는 이번에도 이전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묻고있다. 너라면 기억하지 않겠느냐고. 너라면 망각이라는 편의에 안주해, 평화를 가장한 몽롱한 시간 속을 헤매겠느냐고. '당분간의 평화'를 지키기위해 과거의 기억을 파묻으려는 자들에게 너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며 즉흥적 욕망에만 몰입하고 있지 않느냐고. 

'과거를 지배하려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라고 조지 오오웰은 <1984>에서 말했다. 아아, 무섭다. 과거를 지배하려는 권력자라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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