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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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살이 넘어서는

발길 닿는 데까지 달아나 보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늉도 실컷 했다.

세상의 밑바닥이 궁금하다며, 궁금해야 한다며

멋 부리며 어설프게 굴러다니기도 해 봤지만...

 

돌이켜보니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도무지 자유롭질 않아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유. 본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간절한 법'인가 하다가,

가슴 아래에 '작지만 무거운'

돌멩이 같은 것 하나가 콕 박혀있어

내가 아무리 달리고, 날고, 굴러도

나를 가볍게 하지 않았구나 싶은 것이었다.

가족이 언제나 돌멩이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내 가슴 아래에서 신호를 보내면

가족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김수박의 민들레 중 '가족'(2015. 5. 6.일자 한겨레 신문에서)

 

 

짜르르한 아픔이 전해져 왔다. 큼지막한 시계를 차고 가슴에 얹은 그림 속 남자의 손 언저리에서.

남자의 가슴 속에 돌맹이 처럼 자리잡고 있을 가족이라는 이름의 아픔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진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자유를 갈망하는 딱 그만큼의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내 아픔만이 아닌 내 남편의 아픔이기도 할 것이라는 짐작으로 더더욱 애잔한 마음이 되었다. 그도 나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의 고통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앓고 있는 것이라고.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새를 닮은 외모 때문에 버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주인공은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은 꿈을 소년시절 부터 간직해왔다. 그렇지만 버드는 결혼을 하고 아내가 출산에 이르도록 아프리카를 향한 꿈을 유예시킨다. 그리고는 이윽고 장애를 갖은 아들이 태어나자 꿈을 이뤄야겠다는 욕구를 불현듯 폭발시킨다. 버드가 꾸었던 꿈은 결국 아프리카가 아닌 현실도피였던 것이 아닌가.

나도 그렇다. 버드와 다른 것이 있다면 특별히 내가 떠나가고 싶었던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막연한 유랑을 그리워했다. 그건 젊은 시절 한 때의 일탈과 같은 방황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후로도 쭉 나는 어딘가를 그리워 한다.

본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간절한 법이니까.

 

머리에 혹을 달고 태어난 아기를 죽도록 방치하고 아프리카로 떠날 계획을 세우던 버드는 자신을 덮쳐오는 불행과 정면으로 맞서는 선택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현실의 삶을 살아 낸다고 하는 것은 결국 정통적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것인 모양이네요. 기만의 올무에 걸려 버릴 작정을 하고 있는데도 어느 샌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그런 식으로요."(274쪽)

 

뇌가 두개골 밖으로 비어져 나온 뇌 헤르니아라는 끔찍한 장애가 아니라 단순한 혹을 달고 태어났을 뿐으로 수술후 어느정도 정상아의 모습을 찾은 버드의 아이와 현실도피를 실현하지 않은 버드의 용기를 칭찬하는 가족들의 마지막 장면은 좀 실망스럽다. 차라리 아이를 죽이고 자유를 택했다거나, 또는 아기를 거부하고 싶은 인간에게 손을 빌려 주는 의사(234 쪽)로 부터 아이를 되찾고자 달려가는 버드가 사고사 했더라면 하는 사악한 결말을 생각해 본다.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한 지독한 에고이겠지만 문학은 실제로는 다다를 수 없는 상상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실제로 장애아를 둔 오에로서는 희망적인 결말을 말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에는 지적장애아인 큰아들과 공존함으로써 핵 개발과 사용에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며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며, 어떤 무력도 지니거나 행사하지 않겠다는 일본의 현행 헌법 9조 2항(289 쪽)을 수호하는 등의 평화적 노력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된다.

 

한편 버드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날 꿈을 꾸던 여자친구 히미코는 다원적 세계에 대해 말하는데, 다원적 세계란 이를테면 현실의 버드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공존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또다른 세계의 버드는 아들을 죽이고 아프리카로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다만 현실의 버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선택할 뿐이다. 히미코의 이러한 상상은 현실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또다른 세계의 나는 내가 선택하지 못한 다른 경우를 경험할 것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이다. 지금의 나는 일상이라는 현실을 떠나지 못하지만 또다른 세계의 나는 어떠한 당위도 없이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상상일 뿐이지만, 어쩐지 자유롭다.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쪽을 택한 버드나 소중함을 택한 만화가 김수박이 말하는 자유와는 조금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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