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프랑수아는 없고, 마리의 저녁 초대는 취소되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49쪽)

 

로르는 독신으로서의 마지막 밤을 친구 마리와 보내기로 했지만, 지하철 파업으로 돌연히 약속이 취소된다. 로르와 새삶을 시작할 애인 프랑수아는 세미나에 참석 중이었고, 로르는 급작스러운 외로움을 느낀다. 자신을 온통 쏟아부을 일이 있고, 친구가 있고, 애인이 있지만 홀연히 버려진듯한 '혼자'라는 느낌은 못견딜 쓸쓸함으로 로르를 덮쳐온다. 무엇보다 금요일이었고, 밤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출근과 퇴근의 시계추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면 많은 유혹을 느끼곤 한다. 정해진 일상으로 부터 조금쯤 벗어나는 자유를 상상하는 것이다. 때때로 유혹의 대상은 뚜렷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에 이끌린다. 그것은 한번쯤 괘도를 벗어나고픈 충동이기도 하고, 새로운 모험을 갈망하는 인류의 오랜 고질병이기도 할 것이다. 

<금요일 저녁>의 주인공 로르는 독신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금요일 밤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충동으로 일탈을 감행한다. 마비된 도시에서 우연히 차에 태운 남자와 즉믈적인 사랑에 빠진 로르에게 이성은 없다. 단지 느낌과 감성, 그리고 동물적인 감각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탈에는 반드시 제 궤도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따라서 로르는 남자의 생각 따위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녀에게 그는 내일이면 연기처럼 사라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빨간 스커트로 대변되는  일탈의 밤을 지내고 맞은 아침, 로르는 그녀의 애인 프랑수아에게 둘러댈 말을 생각하며 택시에 오른다. 사람들은 계속 걸어 다닐 것이고, 이제부터 로르도 그들처럼 걸어 다닐 것이다.(128쪽)  그것이 보통 사람의 일상이며, 삶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네임은 이십 년 동안의 작가 생활 동안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다섯 소설은 각각 백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넘지 않는다. <금요일 저녁> 역시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씌여졌다. 그 담백함 때문에 하룻밤으로 한정된 로르의 일탈이 더더욱 아슬아슬하다.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등 베르네임의 다른 세 편의 소설에도 <금요일 저녁>과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이어지고 주인공은 일탈을 감행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이 벌이는 탈선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들이 벌이는 충동과 욕망의 순간을 묵묵히 묘사할 뿐이다. 따라서 독자에게는 그에 대해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필요치 않다. 다만, 그녀들의 아슬아슬한 욕망의 줄타기가 나의 숨겨진 욕망, 혹은 풀어내지 못한 꿈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가득해진다. 그러나 별은 제 궤도를 고수할 수 있을 때만이 일탈이 가능하다.

 

백 페이지 남짓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책 네 권이 우리나라에서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도서정가제도 시행된 마당에 책 값이 좀더 저렴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넉넉한 레이아웃과 행간이 베르네임의 간결한 문체를 돋보이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가난한 독자로서는 같은 값이라면 좀 더 많은 책이  아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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