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로주점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3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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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가 <목로주점>의 초기 제목으로 염두해 두었다는 '제르베즈 마카르의 소박한 삶'에 걸맞게, 소설 <목로주점>은 세탁부 제르베즈가 꿈꾸었던 이상과,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제르베즈가 그의 신산한 삶에서 실제로 이뤄낸 꿈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설의 말미에 제르베즈가 굶어죽었는지, 얼어죽었는지 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열여덟 살의 랑티에와 열 네살에 첫 아이를 낳은 제르베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도망을 쳐 파리에서 노동자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8년이 지난 후, 두 명의 아이를 둔 제르베즈는 랑티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절망하지 않고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써 세탁부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던중, 함석공 쿠포의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이른다. 결혼 초기 그들은 열심히 일한 돈을 저축해 새로 세탁소를 열고 승승장구했으나, 제르베즈의 세탁사업은 오래가지 못했고, 제르베즈에게 기대어 나날이 술꾼이 되어가던 쿠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정신병원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한편 제르베즈 역시 점점 알코올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참으로 이상했던 것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지니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자한테 맞지않고 살면서 마지막에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1권, p.221) 소망했던 소박한 제르베즈가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였다.

제르베즈와 쿠포는 결혼 초기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세탁부와 함석공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결혼식 때 얻은 빚을 빠른 시간안에 청산했고, 적지않은 돈을 저축하기도 했다. 또 제르베즈 부부는 조용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성실한 부부로 알려지면서 동네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기도 하면서, 마침내 제르베즈는 자신의 세탁소를 차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결코 거만하거나 자만심에 가득찬 사람은 아니었다. 세탁소가 승승장구하며 잘 나갈 때도 그녀는 고객들의 세탁물에 성실히 임했으며, 지극히 다정하고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생각했다. 가게를 차림으로써 이미 모든 꿈이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한 제르베즈는 한마디로 매사에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생각했다. 또 제르베즈는  돈벌이를 등한시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느라 술값을 탕진하는 남편 쿠포에게도 늘 너그러웠는데, 부부가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남자의 숨통을 너무 조여서는 안 된다(1권, p.222)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평화와 안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 제르베즈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녀는 이웃들에게 생색내기를 좋아했다. 실제로는 20수밖에 없으면서도 40수를 가진 척했다.(1권, 320쪽)

 

반면, 쿠포의 작은누나와 매형인 로리외 부부는 젊었을 때 현명하게 살지 않으면 노년에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자는 척 창문을 담요로 막아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두고, 서둘러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했다.(1권, 320쪽) 그들은 어떻게든 가난하게 보이려했고, 이웃에게 온정을 베푸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며, 늘 관대한 제르베즈를 험담했다.

이 세상에 알려진 공식대로라면 성실하면서도 이웃에게 후했던 제르베즈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했을테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거절을 할 줄 모르는 제르베즈에게 들러붙어 그녀의 등골을 빨아들이는 전남편 랑티에와 쿠포에 의해 제르베즈의 세탁소는 점점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제르베즈는 공동아파트의 계단 뒷골방에서 처절한 죽음을 맞게 된다.

 

에밀졸라는 1876년 <목로주점> 출판 당시, 삶의 기쁨에 취하기보다 술에 취해 돈과 인생을 낭비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를 보여주며, 그들이 얼마나 경멸스럽고 사회에 위험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2권, 옮긴이 해설 중)하게 해 노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고통을, 부르주아들에게는 삶을 낭비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경멸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루공 마카르 총서의 일곱번째 작품인 <목로주점>을 통해, 알코올이 마카르 가의 유전적 계통과 환경적 요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마카르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제르베즈는 결코 알코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쿠포의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해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다)

대를 이은 알코올 문제는 유전적인 결함이라기 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생각된다. 술에 자주 취하는 부모를 보고자란 아이는 술에 쉽게 노출될 것이고, 알코올에 더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르베즈의 둘째 아들인 '에티엔'은 <제르미날>에서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가. 

 

한편, 2권에서는 쿠포와 제르베즈의 유일한 혈육인 '나나'의 성장배경이 몹시 흥미롭게 다뤄지고 있는데, 이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아홉번 째 작품 <나나>로 이어진다. <제르미날>의 주인공이었던 에티엔 랑티에나, 총서의 열네번 째 이야기인 <작품>의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었던 데에 비해(그나마 클로드는 1권에서 그림 수집가인 노신사에 의해 플라상 중학교로 가게 되면서 <목로주점>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어린 '나나'의 이야기가 충실하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나나>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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