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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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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의 장편소설 <벨아미>에서 아름다운 남자라는 의미의 벨아미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뒤아르는 매력적인 외모를 이용해 사교계에서 여자들을 꼬여내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돈과 출세를 쫓는다. 벨아미는 지적인 인간의 고결한 정신은 커녕, 출세 외의 다른 신념은 갖지 못한 남자로, 돈과 권력과 방탕을 쫓던 19세기 프랑스 상류사회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인 벨아미가 온갖 부정에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해 나가는 결말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이 결국에는 승리하거나 성공하리라는 톨스토이식의 교훈적인 내용을 나는 내심 기대했었던가 보다. 마치 현실에서 매번 그런 기대를 버리지 않듯이.
 
모파상은 <벨아미>에서 개인적 감상이나 선과 악에 따른 권선징악을 보여주려했던 것이 아니라, 19세기 당시 프랑스 상류계층의 추악한 모습과 권력 남용의 사회상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했다. 모파상의 그러한 생각은 현대문학에서 출판한 세계문학 단편선에 실린 63편의 단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파상의 소설은 답을 보여주기 위한 안데르센 동화식의 계몽문학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야기를 펼쳐 놓고, 그에 따르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여지를 주는 사색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모파상의 단편들 한편 한편이 모두 각각의 풍경화처럼 보여진다. 산과 들이 있고, 바다가 있고 하얀 구름이 떠있는, 그리고 간혹 그곳에 인간들의 모습이 있는 그런 풍경화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서로 기만하고 배신하며, 때로는 용기가 없어 놓쳐버린 기회에 대해 후회하고 체념한다. 또 때로는 외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정신적 작용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포 따위에 질식해 가는 것이다. 모파상이 단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런것이 아니였을지. 또한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지혜의 디딤돌이 되어주지 않을지.
 
인생이란 참 기묘하고 변화무쌍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니 말이다! -508쪽
'전원비화'라는 제목의 단편에는 시골 마을에 나란히 이웃한 두 집이 등장한다. 두 집에는 각각 아이가 넷씩 있고, 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여덟아이를 키우기 위해 서로 열심히 도와 일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쪽 집에 15개월 된 막내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부자가 나타난다. 부자는 아이를 입양하는 댓가로 매달 적지않은 생활비를 제공할 것이며, 입양된 아이는 자신들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는 제안을 하지만 가난한 부부는 아이를 팔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거절당한 부자는 이웃한 다른집에 똑같은 제안을 하고, 두번째 부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함께 밭을 갈며 네집 내집 없이 함께 아이를 키우던 두 집은 그 일로 사이가 벌어지고, 아이의 입양을 거절했던 부부는 자신들은 돈에 아이를 팔지 않았다며 당당해하는만큼 아이를 입양시키고 대신 경제적 여유를 택한 이웃을 비난한다.
세월이 흘러 처음 입양을 제의받았던 막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입양되었던 이웃집 아이가 훌륭하게 변한 모습으로 옛부모를 찾아오고, 이를 본 처음 입양을 거절했던 집의 아이는 제 부모를 원망한다. "이런 시골뜨기 노인네들!"
그후로 아이를 팔지않았던 그부모는 그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나.
 
가난을 이유로 아이를 부자집으로 입양보낸 부부는 생활은 넉넉해졌을 망정 양심의 가책으로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는 불행한 가정이되고, 입양된 아이 역시 부자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비뚤어지지만, 자신들의 아이와 신념을 지켰던 가난한 부부의 아이는 오히려 훌륭하게 성장해 부모에게 효도할 것이라는 뻔한 기대를 했던 나는 부자집으로 자기를 보내지 않았다고 부모를 원망하며 떠나가는 이야기의 결말을 보고는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인생은 얼마나 뻔하지 않은지. 매번 기대하는 선의 승리는 얼마나 뻔하게 뒤집어지는지. 또한 '선'이라고 생각한 일이 정말 '선한 것'이 맞는 것인지에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입양되지 못한 가난한 집의 아이가 나였더라도 아마 자신을 보내지 않은 부모에게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망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그것이 비정한 인생의 진실이며, 이기적인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아닐까. 모파상은 그를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자, 이것이 바로 너야!'
 
모파상의 단편선을 읽으며 어떤 아포리즘과 같은 함축적인 지혜를, 혹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의 교훈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이 단편선은 재미없다. 재미도 없을뿐더러 때때로 어이도 없다. 아마도 그러해야만 한다는 '당위'에 묶인 평상시의 사고방식때문에 그러할 것인데, 반대로 여러번 다르게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음미한다면 이 이야기들은 정말로 흥미롭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있는 깊이가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얼마나 너그럽지 못한 것인지, 너그럽지 못한 인생과 맞서기 위해 인간은 또 얼마나 약삭빨라야 하는지 말이다.
인간 드라마에는 사실 권고되어 마땅한 결론은 없다. 그저 현상이 있고, 끝도없는 막연한 진행이있고, 그에 따른 각자들의 생각과 실행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ing..., 설령 내가 없더라도 말이다.
 
인간이 자랑하는 이성과 도덕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쉽다. 또한 인간의 속물근성은 귀족이건 부르주아건 시골사람이건 다르지 않고, 때문에 인간은 마땅히 인간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며,  인생은 한낱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모파상의 단편들을 읽으며 인생이 짧지만은 않다는 것, 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기에 인생을 지루해야 할 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며, 살아가면서 하는 어떤 다짐도 성급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툭툭 끊어지는 단편의 특성상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편의 이야기로 넘어가기까지 산만한 몰입이 필요했다. 때문에 이 단편집은 오래도록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생선초밥을 먹을때 다른 종류의 생선을 먹기 위해서는 입안에 남아있는 뒷맛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여러번 읽었던 '비곗덩어리'와 '목걸이' 외에 이 많은 모파상의 단편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몹시 즐거웠으며, 이를 오래도록 소장하며 반복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더더욱 기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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